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뱀에 관한 추억·1-어렸을 적, 오리가 족히 넘는 ‘국민학교’를 책보따리 어깨에 질끈 동여매고 논길 밭길 산길을 줄달음치며 다녔던 아이들에게 살아움직이는 건 모두가 놀잇감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오면가면 여자아이들을 놀려주는데는 주위에 지천으로 나다니는 뱀과 개구리가 최상이었다. 개구리를 잡아 산채로 손에 움켜쥐고 있다가 앞서가는 여자아이의 목 뒤 옷 속에 집어넣는다. 찐득한 것이 등짝 옷 속에서 버둥거리니 그아니 놀라겠는가. 뱀은 또 어떤가. 목을 수면 위로 내놓고 혀를 날름거리며 유유히 헤엄치는 물뱀을 꼬리를 나꿔채 땅바닥에 두어번 패대기질 쳐 죽인 다음 숨겨가지고 있다가 여자아이에게 살금살금 다가가 목에다 철썩 걸어준다. 순간 여자아이는 그 서늘한 감촉에 놀라 꺄악- 소리지르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그걸 보며 키득거리며 좋아했으니 그런 천하의 악동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었을까 싶다.
#뱀에 관한 추억·2-절친 한 녀석이 군대 제대후 ‘폐병’(폐결핵)에 걸려 백방으로 명약을 수소문 하던 차에 그 친구 아버지가 어디에서 들었는지 ‘폐병엔 뱀탕이상 없다’는 얘길 듣고 아들을 당시 경기도 용문산 언저리에서 성업 중이던 한 건강원(뱀탕집)에 전지요양을 보냈다. 며칠을 그집에서 자면서 독사·화사·잡뱀을 조제한 뱀탕을 먹는 것이었는데, 호기심에 동행을 했다. 집안 구석구석 온통 각종 뱀천지 속에서 첫날밤을 보내게 됐다. 음습하고 냉랭한 방안공기에는 비릿한 뱀냄새가 가득 배어 있어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설핏 잠이 들었다. 얼마를 잤을까. 별안간 등언저리가 스멀스멀해 화들짝 놀라 일어나 방안 불을 켰다. 보니 손가락만한 뱀 새끼 두어마리가 이부자리 언저리를 기어다니고 있었다. 나중에 뱀탕집 주인으로부터 들은 얘기지만, 하루 전 태생(胎生)인 살무사가 새끼를 낳았다는 것이었는데, 그놈들이 철망우리를 빠져나온 것이었다. 그때의 그 섬뜩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보신, 정력제로 인간들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싹쓸이 당했던 뱀들이 요즘 딴 세상을 만나 이곳저곳에 출몰, 똬리를 틀고 앉아 인간들을 경악케 하고 있다. 개체수가 최근 부쩍 늘어나 살판(?)을 만난 것인데, 이유는 인간들이 정력제로 뱀 대신 비아그라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라는 것. 세계 최초로 먹는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가 세상에 나온 게 1998년이니 15년 째다. 그로해서 보통은 7~10마리에서 30마리까지 알을 낳아 새끼를 까는 뱀의 개체수가 10수년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는데도 뱀탕집들이 시름시름 문을 닫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판국에 수시로 민가에 출몰하는 뱀들 때문에 ‘뱀 잡는 진돗개’가 없어 못팔 정도라니 세상은 참 요지경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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