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농부의 꿈 - 전남 영암군 도포면 영호리 황토농장 이행도 씨

▲ 소에게 사료를 주는 이행도 씨. 그의 꿈은 소가 2002두가 될 때까지 계속되고 있다.

영암한우브랜드 ‘매력한우’ 정착에 일조
수도작·양파·무 등으로 소득안정장치 마련

‘매력한우’란 한우브랜드로 전국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전남 영암에서 대를 이어 한우 사육을 하고 있는 이행도(31) 씨. 그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 사회체육학과에 합격하고도 작은아버지의 권유로 가업을 잇기 위해 한국농수산대에 진학했다. 당시는 한우가격이 좋았던 때라 축산인으로서의 성공가능성을 봤고, 부친이 닦아놓은 기반도 있었기에 과감히 농업에 뛰어들었다. 중간중간 고비도 있었지만 젊은 패기로 극복하고, 대한민국 최고의 한우농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가고 있는 이행도 씨를 농장에서 만나 그간의 과정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브루셀라로 기르던 소 살처분
2001년 농수산대 입학 후 소값이 오르면서 80두였던 번식우가 200여두로 늘었다. 탄탄대로를 달릴 줄만 알았던 한우사육은 대학 졸업 이듬해인 2005년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한우사육이 한참 피크에 오르고 있었는데, 호사다마라고 할까요. 옆 농장 소가 브루셀라병에 걸렸고, 결국 우리 소까지 감염돼 100두를 살처분해야 했지요. 2006년에는 부친께서 기르시던 소도 감염돼 200두를 살처분했고요. 방송에서나 봤던 일을 직접 당하고 보니 눈앞이 캄캄하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 막막하더라고요.”
부친과 함께 지역의 개인브랜드였던 ‘매력한우’를 영암공동브랜드로 키우는데 큰 역할을 했던 이행도 씨는 자신의 소도 그렇지만 브루셀라로 지역의 한우농가가 받을 타격에 걱정이 컸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송아지를 재입식해 전열을 가다듬고, 번식우 관리에 있어서는 전문가였던 부친이 TMR사료 공장에 많은 신경을 쓰면서 자연스레 농장관리는 행도 씨의 몫이 됐다.

▲ 단란한 이행도 씨 가족.
인공수정 지원…우량송아지 보급
브루셀라가 한 차례 지난 후 이 씨는 번식우에서 받은 수송아지를 거세비육해 출하하고 3산 이상의 암소는 우시장에 내다파는 일괄사육 방식으로 전환했다. 한편, 번식능력이 우수한 개량된 암소는 계속 번식용으로 사육하고, 능력이 좋지 않은 암소는 난소를 제거해 더 좋은 육질의 소를 만들어 팔 계획이다.
현재 황토농장에사 사육하는 소는 번식우·비육우를 합쳐 450여두. 그의 소들은 육질등급 1+ 이상 출현율이 85%대인데, 이 씨는 이를 95%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학에서 가축번식을 전공하고 가축인공수정사 자격증도 취득한 이 씨는 자신의 농장은 물론 지역 한우농가를 대상으로 인공수정 지원활동을 펼치는 등 우량송아지 보급과 고급육 혈종보전에 노력하고 있다.
한우사육에 있어 이행도 씨가 특히 공을 들이는 부분이 조사료 생산이다. 배합사료 사용을 줄이고 육질등급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그는 작년부터 시범사업으로 5㏊의 논과 밭에 사료용옥수수 ‘광평옥’을 재배해 배합사료 60% 정도를 절감하고 있다. 또 논을 임대해 이탈리안라이그라스도 150㏊ 재배하고, 해남에서는 갈대 등 야초를 260여㏊ 재배해 축산농가에 공급하는 등 농외소득도 쏠쏠하게 올리고 있다.

“영농4-H 활성화 최선 다할 터”
2002년 영암군4-H연합회에 가입한 후 체육부장, 과제부장, 부회장을 거쳐 2009년 군연합회장까지 오른 그는 이후 도연합회 감사와 회장, 중앙연합회 정책국장, 부회장에 이어 올해부터 전국 영농4-H회의 수장인 중앙연합회장을 맡아 활발한 대내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중앙연합회장을 맡아 어깨가 무겁습니다. 회장을 맡고 보니 학교4-H, 4-H본부 등보다 영농4-H회에 대한 지원이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어요. 영농4-H의 사단법인화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죠.”
앞으로의 영농계획에 대해 물었다.
“농수산대에 다닐 때 경북 예천에서 한우 500두를 사육하는 농가를 견학한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 경기도 안성 ‘안성맞춤’ 브랜드의 마케팅교육을 받으며, 그 규모를 능가하는 농가가 되기로 결심했죠. 제 목표는 한우 2002두를 사육하는 겁니다. 한일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에 우리의 꿈이 이뤄졌듯이 2002두의 한우사육도 체계만 잡히면 못할 것도 없겠죠.”
들쭉날쭉 널뛰기 하며 오르내리는 소값 때문에 안정적인 영농을 위해 이행도 씨는 축산 외에 밭농사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무, 양파 등 밭농사를 2~3년간 했다가, 연작장해를 생각해 같은 곳에 벼농사를 번갈아 하고 있는데, 이 면적도 꾸준히 늘려갈 계획이다.
또한 현재 양파 등 밭작물을 재배하고 있는 농장 인근의 땅 26,400㎡(8천평)에 소들이 마음껏 뛰놀고 풀을 뜯어먹을 수 있는 초지를 조성, 복지형 축사를 건립할 계획도 갖고 있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벌써 두 아이의 가장으로서 책임도 막중하다는 이행도 씨. 그를 인터뷰하며 자식농사만큼이나 그의 영농도 100점짜리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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