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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투게더] “나 같은 ‘한국인연’ 또 있을까요?”2013 다문화특별기획 - 현충일에 만난 결혼이주여성 필리핀 출신 가티 씨(한국명 이주영) 이야기
박재호 기자  |  spospopp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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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6.10  11:5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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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티씨가 외할아버지를 추억하며 필리핀 참전비에 헌화하고 있다.
 외할아버지 6.25전쟁 참전…“전투보다 추위에 더 고생”
아버지는 장충체육관 건설기술자로…“그땐 한국이나 필리핀이나”
본인은 한국인과 결혼…자녀 둘

경기도 안산에 사는 필리핀 경혼이주여성 ‘가티’ 씨(40). 남편 김 모 씨(46)와의 사이에 초등학생 아들(12)과 중학생 딸(10)을 두고 넉넉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한다.
6·25에 참전한 외할아버지와 기술자로 한국에 왔던 아버지, 그리고 본인은 한국인과 결혼한 여성. 현충일 맞아 필리핀 참전비를 찾은 가티씨를 만나봤다.

지원군으로 파병된 외할아버지

   
▲ 가티 씨(한국명 이주영)
가티 씨의 외할아버지 라모스 씨(1997년 작고)는 19살이던 1950년 6·25전쟁에 참전했다. 가티 씨는 외할아버지로부터 한국에서 있었던 전쟁에 대해 귀가 따가울 정도로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가 ‘아이에게 이제 전쟁 이야기는 그만 좀 하세요. 아버지’라고 핀잔(?)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외할아버지는 가티에게 “전투가 힘들었던 것 보다는 한국이 어찌나 추운지 겨울에 얼어 죽은(저체온증) 병사들이 꽤 많았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가티 씨는 “어린 나이에 한국에 대해 전혀 몰랐던 나는 그게 무슨 소린가 했죠. 그런데 제가 결혼해 막상 한국에 와보니 봄과 가을에도 무척 추운 거예요. 옛날에 옷과 난방시설이 지금처럼 좋지 않을 때 외할아버지가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할아버지도 (동상 때문에) 발가락이 많이 아팠대요.”
(경기도 고양에 있는 필리핀 참전기념비에는 1,496명의 필리핀군이 왜관 김천 대구 임진강변 철원지구 전투에 참가, 사망 92명, 부상자 299명, 실종 57명의 고귀한 희생을 냈다고 적혀있다.)
가티의 외할아버지는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 1997년 6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장충체육관 지붕에 오른 아버지
“필리핀에는 비가 많이 와요. 그래서 비를 막는 기술이 뛰어나죠. 아버지는 1960년대에 서울에 있는 장충체육관-발음이 어려운지 ‘짱쭝쩨유꽝’으로 들린다-이란 곳에 비가 새는 것을 점검하는 기술자로 오셨대요. 고향집에는 그때 찍은 사진이 있는데... (보여드릴 수 없어) 아쉽네요.”
“1983년 아버지가 감전(感電)사고로 돌아가시고 저희 집은 무척 어려워졌어요. 사위를 먼저 보낸 외할아버지도 상심이 크셨고 어머니는 중국인 집에 가정부로 일하셨죠. 1997년부터 마닐라의 한 한국식당에서 근무했는데 거기서 남편을 만났어요. 우리는 결혼소개소를 거치지 않고 연애를 한 거죠.”
남편은 안산지역에 있는 공장에 다니다 IMF 때 실직하고 먼 친척이 운영하는 필리핀의 한국식당에 와서 가티를 만났다고 한다.
가티가 10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는 “예전에 우리나라(필리핀)나 한국이나 비슷하게 살았는데 지금은 너무나 차이가 나....농구도 우리나라가 훨씬 더 잘했지.”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단다.

   
 
“아이들 잘 키울게요” 참전비 앞의 다짐
가티는 2000년 남편과 결혼 후 한국에 왔다. 필리핀 여성으로서는 늦은 결혼이었다.
남편은 한국에 돌아와 시흥의 농장에서 일을 하다가 2006년부터 논을 빌려 농사를 지으며 차에 농작물을 싣고 다니며 장사를 한다. 가티 씨는 안산지역의 작은 임가공업체에서 전자부품 조립 등의 일을 하고 있다.
가티 씨는 이런 기막힌 한국인연 가족사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우리 고향 먼 할아버지는 스페인 사람이었대요. 그리고 제 외할머니는 화교피가 섞여있죠. 조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지구 사람 중에 다문화 아닌 사람은 없을 거예요. 아이들은 자세히 봐야 알 정도로 외모는 한국 사람과 비슷한데 제가 필리핀 출신이라는 게 아이들에게 알려진 후로 조금 놀림을 받는 것 같아요. 그럴 때는 우리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한국에 와서 얼마나 도와주셨는데 하는 마음이 들고 슬프고 화가 날 때도 있어요.”
완곡하긴 해도 가티 씨는 자녀들에 대한 또래 아이들의 놀림, 자신이 사회에서 받는 차별 등에 대해 서운함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가티 씨는 참전비에 국화 한 송이를 헌화했다.
“아이들을 잘 키워 외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요. 저는 이 기념비에 오면 그분들을 만나는 것 같아요. 보고 싶어요. 저도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외할아버지, 아버지, 본인 그리고 아이들까지... 가티 씨의 4대에 걸친 ‘소설같은’ 한국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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