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거래에 길을 묻다 - 싱그러운쌈채원 농장지기 이종국 씨의 농산물 직거래 경험담

1. 내가 직거래를 선택한 이유는?
2. 직거래 유형…로컬에서 IT까지
3. 꾸러미 사업 참여
4. 생협 등을 통한 거래방식
5. 직거래…새벽시장 방식이어야

하우스재배 프리미엄 무용지물
요즘 직거래 상황은 죽을 맛이다. 지난 2월부터 선물수요로 특수를 누려왔던 나의 직거래 수익률도 5월 초 이후 급전직하 한 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채소는 날씨가 30℃를 오르내리면서 신선도 유지가 어려워진 상황이다. 한낮에는 수확 자체마저 용이하지 않은데 직거래 장터에서 판매를 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지난겨울부터 하우스 재배로 누렸던 프리미엄도 이젠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 상황을 수수방관할 수는 없다. 앞으로 장마철 상추 값이 몇 배로 뛸 것이라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희망만으로 두세 달을 그냥 놀고먹을 수는 없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찾아낸 방법이 식당 직거래 영업이다. 주변에 있는 식당들을 일일이 찾아가 영업을 하는 과정이다. 확률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농산물 직거래는 하나의 패턴에 안주하는 순간 갑자기 생존 자체의 위기로 내몰릴 수 있다. 그렇다고 다양한 판매루트를 동시에 확보한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내가 농사를 짓겠다고 할 때 어머니가 그렇게 말리셨구나 생각을 한다.

오늘 아침(2013년 6월4일) 경향신문을 보니 ‘직장의 신’에서 고과장 역을 맡았던 22년 무명 김기천 씨에 대한 인터뷰 내용 한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외롭고 힘들어도 버텨야 해요.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고과장’이 있잖아요.” 나는 직장의 신을 한 번도 시청한 적이 없다. 그런데 ‘고과장’이 힘이 들지 농사꾼이 더 힘들지는 내기를 하지 않아도 이미 결판이 나 있는 상황이다.

농사꾼이 농사에만 신경 쓰고 판매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말아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경제논리여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문제는 직거래를 한다고 장돌뱅이처럼 온갖 노력을 기울여 봐도 손에 수익을 움켜쥐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농민들의 슬픔을 어찌 꼬박꼬박 월급 받아먹는 사람들이 알 수 있겠는가?

65만 조합원…생협 시스템에 길 있다
요즘 직거래만 죽을 쑤고 있는 것이 아니다. 농수산물도매시장은 정말 가관이다. 채소 품목만 살펴봐도 배추·무·파·마늘 할 것 없이 모두가 최저가를 경신하고 있는 중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유통구조 개혁한다고 5월 27일 발표한 날을 전후해 최저가 기록들이 양산되며 공개적으로 비웃고 있다. 오늘 밤 당장 가락동이든 안양이든, 대전이든 아무데 농수산물도매시장 경락상황을 한 번이라도 파악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중간 도매상들이야 신이 났을 게 분명하다. 농산물 가격이 복잡한 유통과정 때문에 가격이 뛴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말을 하는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경매 과정에서부터 가격을 후려쳐야 중간 도매상들의 이익은 그만큼 높아진다. 일 년 중 가격폭등이야 며칠 안 된다. 그런 상황에서도 수없이 많은 일반 농산물들은 최저가에 신음하고 있다.

농산물직거래를 하다보면 돈을 벌려면 농사짓는 것 보다는 도매상이나 식자재업체를 하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 농산물 중간 거래업자들은 정말 너무도 쉽게 돈을 벌고 있다. 농사꾼이 생존의 분수령에서 고통을 겪고 있어도 이들은 안중에 없다. ‘갑의 횡포’가 가장 심한 곳이 농수산물도매시장이다. 직거래를 부추기는 말들이 (농사를 때려치우고) 이들의 길을 걸으라고 하는 것은 아닐텐데 참으로 헛갈릴 때가 많다. 되짚어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런데, ‘갑의 횡포’라는 악조건을 뚫고 생협은 조합원수 65만 명 이상을 확보하며 최근 몇 년 사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래프로 그려보면 거의 수직상승에 가깝다. ‘한살림’ 35만 명, ‘아이쿱’ 15만 명, ‘두레생협’ 10만 명 정도로 조합원 수가 늘어나고 있다. ‘한살림’ 매출이 2,000억 원을 넘어섰고, 아이쿱은 3,000억 원을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동네에만 있는 줄 알았던 생활협동조합이 이만큼 성장해 있는 것이다. 생협 성장의 힘은 아이러니하게도 농산물 가격 폭등과 폭락 속에서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왔기 때문이다. 기회만 닿으면 물가안정이라는 무기로 중간도매시장 업자들만 배불리는 상황에서였다. 도매시장 배추값이 폭등할 때 생협 조합원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농산물 가격 폭락기에는 조합원의 힘은 농민들이 편안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다. 판로 걱정 없이 친환경으로 좋은 농산물 생산에 농민들이 힘 쓸 수 있도록 든든한 후원군이 되어 줬다.

나도 지난 3월 그동안 고대하던 ‘한살림’ 생산자 회원에 가입했다. 하지만, ‘한살림’ 생산자 회원은 6개월의 예비후보 기간을 거쳐야만 한다. 이제 앞으로 8월까지만 자격을 갖추면 정식으로 ‘한살림’에 납품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9월부터 내가 농사지은 전량을 ‘한살림’에 납품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이지 농산물 직거래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일을 하지 않을 것 같다. 농사꾼이 다른데 신경 쓰지 않고 농사만 제대로 짓는 것 자체만으로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는 농민들이 국민들의 먹을거리를 책임진다는 사명감을 다할 수 있도록 생산에 좀 더 힘쓰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어야 하는 게 아닌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몇 조원 씩 예산을 퍼부을 수 있는 정부라는 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2천억, 3천억 밖에 되지 않는 자발적 시민모임인 생협만큼도 못한 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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