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운 객원 칼럼니스트

▲ 홍종운 객원 칼럼니스트
 지방직 농촌지도공무원의 국가직화를 바라며

개발도상국 가운데
녹색혁명을 성취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
체계적인 농촌지도업무는
우리의 자랑이었는데…

1976년 처음으로 국민 모두가 이 나라 농토에서 생산된 쌀로 배를 불릴 수 있게 한 쾌거는 대한민국 역사상 초유의 기록일 뿐 아니라 세계 개발도상국 중 유일하게 이룬 녹색혁명의 성취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37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개도국들 가운데 녹색혁명을 성취한 예가 없다.
본래 녹색혁명이란 말이 등장한 것은 1960년대다. 당시 필리핀에 있는 국제미작연구소에서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세계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가난한 인구를 위한 새 품종 쌀 육종에 관심을 쏟고 있었다. 많은 노력 끝에 ‘IR8’이라는 생산성이 매우 높은 품종을 얻는 데에 성공했다.
이 품종은 키는 작고 이삭 수는 많아 질소비료를 주는 만큼 수량이 높아지는 특징을 나타냈다. 종전 열대지방의 벼들은 키가 너무 큰데다 수량을 높이기 위해 질소비료를 주다보면 이내 쓰러져서 기대한 수확을 얻기 어려웠다. 그런데 새 품종 ‘IR8’은 그렇지 않았다. 비료를 듬뿍 주었을 때 벼 수량은 정보당 10톤에 육박했다. 재래품종의 정보당 2.5톤의 4배에 달하는 수량이었다. 국제미작연구소의 학자들은 이 벼 품종을 ‘기적의 쌀’(Miracle Rice)라 부르며, 이 벼 품종이 개도국에 보급되면 쌀의 녹색혁명이 성취될 것으로 확신했다. 그런데 그 학자들의 기대는 아직도 희망에 그치고 있다.
우리나라 연구진은 재빨리 ‘IR8’이 갖는 장점에 착안해 ‘IR8’을 국내에서 재배해 보았다. 열대지방의 혈통을 가진 ‘IR8’은 우리나라의 초여름과 초가을의 차가운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농촌진흥청은 그 상황에 좌절하지 않고 국내 학자들과 협동해 수량성은 ‘IR8’과 대등하면서 저온에 더 잘 견디는 ‘IR667’을 육종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 품종을 ‘통일’이라 부르면서 농가에 보급했다.
‘통일’이 우리나라 기후에 맞도록 육종된 품종이기는 했지만 농가 현장에서 많은 문제점과 만나게 돼 연구직 공무원과 지도직 공무원이 주야로 현장을 누비며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는 그 때 질소비료를 자급하고 남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지도직 공무원과 연구직 공무원이 함께 뛸 수 있는 조직의 장점까지 갖춘 것이 이 나라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쌀의 녹색혁명을 성취시킨 나라가 되게 했다.
이 사실은 FAO(유엔식량농업기구) 등 국제농업기관들이 인정한 사실이다. 대부분 개도국들의 경우, 농업연구기관과 농촌지도기관은 별개의 부처에 속한다. 그런 나라들에서는 문서상으로는 농업연구기관과 농촌지도기관이 협조하도록 쓰여 있지만, 그것은 형식에 그치기 일쑤다. 내가 일한 적이 있는 인도의 경우, 농업연구는 별도의 기관이 관장하고 농촌지도업무는 주 농업부가 주관하고 있었다. 서아프리카 가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방화라는 풍조가 일던 때(1990년대) 진지한 검토도 없이 시·군 농촌지도소를 농업기술센터라 개칭하면서 농촌진흥청의 지도업무를 시와 군에 속하게 했다. 이는 농업기술의 연구와 연구결과의 확산은 단순한 행정업무가 아니라는 엄중한 현실을 도외시한 부적절한 판단이었다. 그 결과 이 나라가 자랑했던 체계적이고 효율적이라는 농촌지도업무가 전문성을 잃어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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