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을 앞두고 어머니를 생각한다.
미국이 필리핀을 점령했을 때 일이다. 마닐라해안을 향해 함포사격을 하려고 할 때 한 해병의 옷이 바람에 날려 바닷물에 떨어졌다. 순간 그 해병은 상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바다에 뛰어들어 자기옷을 건졌다. 그러나 그는 상관 명령불복종으로 법정에 서게 된다.
사법관이 왜 물에 뛰어들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젖은 옷속에서 어머니의 사진을 꺼내 보였다. 사법관은 목숨을 걸고 어머니의 사진을 간수해 내려는 사병의 지극한 효심에 감복, 사병의 죄를 풀어주었다. 어머니의 사랑은 위대한 것이다.
1950년 6월25일 6·25한국전란이 벌어지면서 서울은 교통이 차단되어 쌀이 들어오지 않았다. 있던 쌀도 인민군에 빼앗겨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어머니가 6년 연상인 누이와 함께 동대문 밖 청량리 먼길을 걸어가 배추 우거지를 거둬 이고 왔다. 이것으로 된장국을 만들어 허기를 모면했다. 그것도 잠시 공중포격이 우심해지면서 청량리 밖 채전밭 길 마저 막혔다.
밥을 굶어 살이 부석부석 부어 올랐다.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누르면 고무스폰지처럼 움푹 패였다. 허기가 심해 눈에 안개가 낀듯 허상이 보였다.
이때 어머니는 가까운 인왕산을 올라 독이 든 아카시아잎을 따와 삶아 물에 담가 독을 뺀 뒤 생된장에 무쳐먹었다. 이때 그 아카시아잎의 맛은 환상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미군 폭격기의 공습이 심해 폭발음이 번개치듯 심할 때는 우리를 가만히 품에 안았다. 그 이후 어머니 품안의 아늑함과 따뜻함을 잊은 적이 없다.
어머니가 그립다.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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