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정종철

“내가 봐도 비호감 용모”…연예인보다
남 앞에 나서기 좋아해 ‘광대’ 선택

정종철(36)은 남녀노소 많은 팬을 보유한 개그맨이다. 몇 년 전에 KBS2TV 개그콘서트 프로그램에서 ‘옥동자’ ‘마빡이’로 존재를 널리 알린 그다.
연예인을 꿈꾸는 사람이 많은 요즘, 개그맨이란 직업도 그 문턱이 높은 직업 중 하나인데, 정종철 씨는 이 문을 한 번에 넘었다. 무명 개그맨들에게는 그가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오지마을에서 힘들게 보냈던 어린시절의 아픔을 희극으로 승화시킨 남다른 노력이 든든한 기초가 됐다. 그를 만나 인기 개그맨이 되기까지 걸어온 짧지만 짧지 않은 얘기를 들어봤다.

구멍가게도 없는 오지 출신
“독자 여러분에게 삶의 또 다른 자극과 도전의식을 일깨워주는 좋은 말을 들려드려야 하는데, 제 얘기가 도움이 될지 걱정입니다.”
인터뷰에 앞서 정종철 씨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자신이 봐도 못생긴 비호감 얼굴에다 남자치곤 단신인 162㎝인 그는 연예계에 종사하면서도 연예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람을 웃기는 것을 좋아하는 광대’로 개그연기에만 열중하며 산다고 한다.
정종철 씨는 충북 제천면 두학리(현 행정명. 제천시 두학동) 출신이다. 16가구가 사는 가난한 마을이다. 지금은 흔한 슈퍼마켓이나 약국이 없던 곳이다. 라면 한 개를 사려고 해도 읍내까지 먼 길을 가야 하는 오지 중 오지였다. 2004년 버스가 처음 들어왔는데, 그 마저도 하루에 오후 3시, 딱 한 차례였다.
흙집인 그의 집은 벽을 툭 치면 흙이 우수수 떨어지고, 위풍이 세서 벽지가 ‘후드득’ 소리를 내곤 했다.

단지 못생겨서 개그맨 꿈꿔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장래 희망을 물으면 용모가 시원찮아 차마 남들처럼 대통령이 되겠다는 말을 못하고 목사가 꿈이라고 말했다. 5살 때부터 다니던 교회에서 목사님이 음식과 간식을 주는 걸 보며 목사가 부자라고 생각했던 터였다.
중학교 2학년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키가 자라지 않고 얼굴만 커지는데다, 얼굴에 여드름이 나기 시작했다. 당시 어머니는 밥을 차려주며 얼굴을 자주 닦으라고 했단다. 자주 세수하면 아들의 못생긴 얼굴이 행여나 잘 보일까 생각한 어머니의 궁여지책이었다. 그런 어머님의 안타까운 바람에 그는 열심히(?) 세수를 했다.
하지만 자신의 얼굴을 자기가 봐도 영 아니었나 보다. 거울을 보며 못난 얼굴로는 목사가 되기 힘들다고 생각한 그는 목사의 꿈마저 접었다.
혈액형이 A형이었던 그는 지금과 달리 내성적이라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중2때 개구쟁이 친구와 어울리며 자연스레 성격이 바뀌었는데, 그 때부터 남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하면서 개그맨이 되겠다는 꿈을 어렴풋이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님은 광대가 되는 것을 적극 반대해서 대놓고 개그맨이 되겠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못했다.
사진을 찍으면 얼굴에 붙어 귀가 잘 보이지 않는 얼굴을 보며, 그는 개그맨이 돼 못생긴 그 얼굴로 남들을 웃겨보겠다는 포부가 확고해졌다.
개그맨이 되기 위해 그는 백남봉, 이주일 등 선배 코미디언을 롤모델로 삼아 그들의 성대모사와 몸짓을 따라 하며 연기연습에 몰입했다.
돼지저금통을 털어 당시로는 거금인 10여만 원 하는 미니 카세트녹음기를 샀다. 유머1번지 등 모든 코미디 프로를 녹음해 듣고 따라하고 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닭소리, 개 짖는 소리, 비행기 날아가는 소리 등도 녹음해 따라했다.

500대1 경쟁 뚫고 단번에 합격
어려운 가정형편에 무작정 놀면서 개그맨의 꿈을 꿀 수는 없었다. 냉면집에 취업해 5년간 주방보조로 일하면서 260만원의 월급을 받던 그는 육체적으로 편한 홀서빙을 하고 싶었지만, 사장은 그의 못난 얼굴에 손님이 불쾌해 할까봐 주방탈출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주방에서 무채를 썰다 김미화, 김영철, 심현섭 등 선배 개그맨의 연기를 보며 자신이 연마해온 연기 레퍼토리와 비교하던 그는 ‘이제는 때가 됐다’고 느꼈다. 마침 TV 자막에 KBS 15기 개그맨 공채 공고를 보았다. 더 이상 주저할 새가 없었다.
당시 아나운서와 개그맨 공채에 1,000여명이 몰렸고, 개그맨 공채만 500:1이었다. 오후 5시 원서마감에 3시 반에 도착한 그는 급한 나머지 아나운서 접수 줄에 잘못 섰다. 초라하고 못난 얼굴을 본 KBS직원이 “당신 개그맨 공채 보러온 게 아니요? 저 줄로 서세요!”라고 말해 가까스로 개그맨 줄에 서서 서류제출을 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가까스로 서류접수하고 서류심사, 개인연기, 무대연기, 면접 등 여러 차례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15기 공채에 합격했다. 단 한 번의 도전으로 일생의 행운을 잡은 것이다.
그는 그동안 ‘대한민국 1교시’ ‘뿌리깊은 나무’ ‘개그콘서트’ 등 많은 프로에 출연해 인기를 구가했다. KBS연예대상 등 여러 수상을 하며 인기 개그맨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인터뷰 내내 마치 모노드라마의 주인공처럼 개그맨이 되기까지의 전 과정과 삶의 흔적을 대화와 몸짓을 총동원해 재미있게 얘기해줬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사람은 누구나 꿈을 가져야 합니다. 꿈을 향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꿈을 이룰 기회는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마치 빗물이 모든 사람에게 내리듯 찾아옵니다. 빗물은 한순간 사라져 버립니다. 관심을 가지고 노력을 다해 빗물을 담아내야 합니다. 꿈을 이뤄다 하더라도 더 큰 꿈을 채우기 위해 더 큰 그릇을 마련해 담아내야 합니다.”
그의 마지막 메시지가 긴 여운으로 가슴에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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