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동물의 세계, 특히 새들은 수컷이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으로 암컷들의 환심을 사게 해 ‘번식’이라는 일생일대의 성스러운 과업을 수행한다. 종족번식을 위한 짝짓기 배우자의 선택은 어디까지나 암컷에게 있다.
그러나 인간은 그와 정반대다. 대체적으로 여성이 아름답다. 그래서 젊으나 늙으나 아름다워지고 싶은 ‘위대한 콤플렉스’를 평생 가슴 속에 담아두고 산다. 고대 중국의 3대 미인으로 꼽는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양귀비(楊貴妃)도 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서시는 여자치고는 발이 유난히 커서 늘 두발이 보이지 않는 긴 치마를 입었다. 그런가 하면 왕소군은 어깨가 새처럼 좁아 어깨 부위에 요즘식의 ‘뽕’을 넣어 어깨선을 크게 부풀렸다. 화청지에서 밤낮으로 꽃물목욕을 즐겼던 천하의 요부(妖婦) 양귀비는 귓볼이 거의 없어 커다랗고 묵직한 귀고리를 착용해 귓볼을 최대한 늘어지게 했다고 전한다.
지난 8일 지구를 영원히 떠난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 역시 ‘철(鐵)의 여제(女帝)’라는 대외적인 강성(强性) 이미지에 가려진 자신의 여성성을 한껏 드러내려 외모 치장에 무진 애썼다. 그는 평소에 실크블라우스와 무릎을 덮는 스커트를 ‘항상 안정감을 느낀다’는 이유로 즐겨 입었다. 색깔도 그녀의 금발머리와 잘 매칭이 되는 푸른색 계통이었다.
그는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중학교를 채 마치지 못한 잡화상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영민한 딸 대처만큼은 지역 명문 여자학교에 보냈다. 그런 가정환경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대처는 특히 진주를 좋아해 진주목걸이, 진주귀고리, 진주브로치를 애용했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서른다섯살 때 억만장자 이혼남을 만나 결혼하면서 남편의 ‘보스(The Boss)’로서 충분한 재정적 지원을 받아 구차하지 않은 삶을 산 것도 그러한 취향에 속되지 않은 품격을 입혀줬다.
그러나 그녀의 패션 가운데서 세인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은 액세서리는 ‘아스프레이’ 브랜드의 사각형 검정 가죽 핸드백이었다. 그는 외국 정상들과의 만남이나 중요 행사때마다 이 검정 핸드백을 들었다. 대처는 이 핸드백을 자신의 단호함과 카리스마를 나타내는 도구로 활용했다. 그래서 외국 정상이나 정부 각료, 의회 의원들 앞에서 책상 위에 검정 핸드백을 올려놓는 대처의 모습을 두고 ‘공격적’이고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는’의 뜻을 가진 ‘핸드배깅(handbagging)’이란 신조어가 생겨났다. 그야말로 죽어 이름도 남기고 가죽도 남기니 ‘인사유명 인사유피(人死留名 人死留皮)’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