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전체길이 497.5km, 1888년 마포~인천간 최초 증기선 운항, 1900년 최초 근대식 철교 완공으로 서울역~인천간 길이 26마일(41.6km)의 경인철도 놓임, 1916년 최초 인도교 가설(그후 1934년 길이 1005m, 폭 20m 새 인도교 완공), 1925년 을축년 7월15~18일 4일간 400~500mm의 기록적인 폭우로 제방이 터져 순식간에 용산일대와 남대문 앞이 물바다가 돼 익사자 404명, 가옥유실 1만2307호의 대홍수 피해 초래…
우리 민족의 젖줄이요 대동맥이라는 한강이 가지고 있는 영욕의 기록들이다. 물론 근대의 기록들이지만, 고대 때부터 한반도의 중심이고 유역면적이 가장 넓은 한강 유역을 차지하는 나라가 그 시대 반도의 주인이 됐다.
그러면 한강유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는 언제일까? 고고학 자료를 종합해 보면 대략 구석기시대로 추정되고, 지금으로부터 7천년 전부터는 신석기인들의 주 생활무대가 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20여채의 움집터가 발굴된 강동구 암사동의 선사유적지가 바로 그때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그뒤 기원전18년 백제의 온조왕이 한강 북쪽의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연 이래 한강유역은 백제·고구려·신라·고려가 각축을 벌였던 혈전의 땅이었다. 지금의 물길이 잡힌 건 1392년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열고 한강유역인 한양에 도읍을 정하면서부터다. 노사신 등이 지은 <동국여지승람>의 ‘경도(京都)’편에는 도읍지의 형세를 이렇게 그리고 있다.
‘경도는 고조선의 마한 땅으로 북쪽의 진산(鎭山, 삼각산·북한산)인 화산(華山)은 용(龍)이 서리고 호랑이가 쭈그리고 앉은 형세이다. 남쪽은 한강이 옷깃과 띠처럼 둘러있고… 그 지세의 훌륭함은 동방의 으뜸이며 천연의 요새지이다.’
이 한강이 처음 시작되는 발원지는 어디일까? <세종실록지리지><동국여지승람><택리지><대동지지> 등의 고문헌에는 강원도 오대산의 우통수(于筒水)로 기록돼 있다. 이 우통수에서 발원해 남한강과 북한강으로 나뉘어 반도의 허리를 휘돌아 서해로 나아간다. 남한강 첫 나루터인 정선 아우라지 나루에는 이런 처연한 상사(相思)의 노래도 흘러다닌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 주게/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사시장철 임 그리워 나는 못살겠네.’
그런 한강이 다시 또 한 시대 역사의 수식어로 떠올랐다. 새 대통령이 자신의 아버지대에서 일세(一世)를 풍미했던 ‘한강의 기적’에 이은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일궈 보겠다고 한강변에서 애드벌룬을 띄워올렸다. 문득 지금쯤 한참 봄의 문턱에서 언 몸을 풀고 있을 한강을 보러가고 싶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