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동 수원예총회장·시인

▲ 김훈동 수원예총회장·시인

 "인간에 관해서는 평등,
경제면에서는 공정,
이것이 협동조합이라는
사회적 발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의 하나다"

‘다섯 명이면 쉽게 만드는 협동조합-모든 절차를 돕겠습니다.’ 거리에 나붙은 광고 문안이다. 아무리 협동조합시대가 열렸다고는 하나 너무 안이한, 협동조합을 가볍게 여길 수 있어 별로 달갑지 않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어쩌랴. 지난해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면서 전국 지자체마다 협동조합 설립 신청건수가 밀려들고 있다. 경제민주화 바람과 더불어 자본주의의 대안이라는 평까지 나올 정도다. 국회에서 협동조합법이 통과된 것이 이상하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인데도 그렇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심지어 일반기업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있다.
협동조합은 일종의 경제공동체다. 협동조합이라고 하면 언뜻 농협만을 연상하게 된다. 하지만 썬키스트, FC바르셀로나 프로축구단, AP통신, 알리안츠생명, 스페인의 몬드라곤(mondragon) 등도 세계적인 협동조합들이다. 이제껏 농협을 비롯한 수협, 엽연초조합, 산림조합, 중소기협, 신협, 새마을금고, 소비자생협 등 여덟 개 형태의 협동조합은 그때그때 제정된 특별법에 근거해 설립됐다. 53년간 지속됐던 협동조합 개별법 시대를 거쳐 바야흐로 협동조합기본법 시대가 열린 것이다.
협동조합은 재화, 또는 용역의 구매, 생산, 판매, 제공 등을 협동으로 영위함으로써 조합원의 권익을 향상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고자 하는 사업조직이다. 금융과 보험업을 빼고는 거의 모든 산업부문에 걸쳐 협동조합을 만들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 특히 지역 주민들의 권익·복리 증진과 관련된 사업을 수행하거나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나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공익적 활동을 위주로 하는 ‘사회적 협동조합’까지 만들 수 있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참가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고 그것에서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강하고 명확한 목표가 없으면 협동조합은 성공할 수 없다. 협동조합은 정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다 구체적이며 기능적인 효용과 필연성을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성공한다. 그 효용이란 단순한 경제적 이익을 초월하는 것이다. 인간사회의 역사는 공동을 주축으로 해 조직된 것이 아닌가.
협동조합원칙은 인간의 협동적인 사회생활의 한 양식(樣式)이며 조직과 운용의 형식이다. 원칙은 보다 좋은 길을 모색하기 위한 나침반이다. 원칙이 중요하다는 것은 보다 좋은 것으로 창조를 향한 ‘최고(最高)의 발사대’의 역할을 해주기에 그렇다. 원칙이 창조의 기초로써 활용됐을 때 그 효용이 최대한으로 발휘된다. 협동조합은 출자금이 얼마이든 조합원이 1인1표의 의결권을 갖는 깊은 의미는 단순한 평등사상만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금전 혹은 자본의 침식으로부터 지키는 ‘쐐기’라는데 의미가 있다. 기업의 ‘1주(株)1표’ 방식과 다르다. 인간에 관해서는 평등, 경제면에서는 공정, 이것이 협동조합이라는 사회적 발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의 하나다. 협동조합은 조합원만이 아니고 널리 지역사회의 전체주민의 복지를 염원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협동조합은 경제를 초월한 그 어떤 것이다. 협동조합을 민주주의 학교라고 일컫는 이유다.
분명 협동조합은 새로운 경제체재다. 그간 여러 가지 법적 제약을 받았던 작은 규모의 민간중심의 사회적 경제활동이 가능해진 만큼 ‘건강한 협동조합’이 많이 태어나길 기대한다. 자본주의의 약점을 보완하고 일자리 창출은 물론 사회서비스를 제공할 통로로서의 협동조합은 자발성과 자주성을 기초로 창조적인 발전을 꾀해야 한다. 경제공동체인 협동조합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며 생산적 복지의 결실을 함께 누릴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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