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인류 최초의 자동차는 1771년 프랑스의 쿠노(Cugnot)가 만든 세바퀴 달린 증기자동차다. 오스트리아 출신 기술자로서 루이15세 휘하의 포병장교였던 쿠노가 증기기관을 사용한 포차(砲車)로 시속 4km로 주행했다. 그 100여년 뒤인 1886년 독일의 칼 벤츠가 “말 없이 달리는 마차를 만들겠다”며 가솔린 내연기관 엔진을 장착한 2인승 ‘페이턴트 모터바겐’ 자동차를 만들었다. ‘특허 자동차’라는 이름뜻을 가진 이 차가 비로소 사람이 탈 수 있는 ‘차다운 차’였는데, 통통통~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달렸던 이 차의 최고속도는 시속16km였다.
그런가 하면, 최초의 스포츠카는 다임러사의 4인승 오픈카 ‘프린스 헨리’로 천재적인 자동차 발명가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설계했다.
우리나라에 현대식 승용차가 처음 들어온 것은 조선조 27대 왕인 순종황제(1874~1926, 재위기간 1907~ 1910)때다. 이때 황후였던 윤비(尹妃) 전용차로 세계적인 명차(名車) 생산회사인 영국 다임러사의 1909년형 4기통 자동차를 들여왔다.높이 215cm, 폭 175cm, 전체길이 434cm인 이 황실전용 신식 ‘어차(御車)’는 자전거처럼 철살로 된 타이어와 게눈처럼 툭 불거져 나온 헤드라이트를 장착하고 자주빛깔이 도는 붉은색 외장으로 되어 있다. 운전석과 객석은 분리되어 있고, 핸들은 영국식으로 오른쪽에 있다. 몸통 양켠에 초자창(硝子窓, 유리창)이 각각 두개씩 설치되어 있으며, 좌석과 등받이는 모두 검은색 가죽을 씌웠다. 객석이 있는 실내는 당시 황실문장인 이화(梨花)무늬가 있는 비단으로 장식되었고, 문의 손잡이 옆에도 양각으로 된 이화문장이 부착돼 있다. 이와는 달리 순종황제의 전용 어차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사의 1903년형 검은색 캐딜락 8기통으로 재위4년간 이용했다.
그것이 고작 100여년 전의 일인데,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굴지의 자동차 수출국 반열에 올라있다. 게다가 가는 곳마다 온통 차·차·차로 넘쳐나고 서부활극과도 같은 ‘로드 레이지(Road Rage)’, 즉 ‘도로 위 분노’도 차고 넘친다. 꼬리물기, 끼어들기, 급정거, 급출발, 과속운전에 폭주족까지 도로 위 분노 유발요인은 극에 달해 있다. 이땅에서는 ‘능력있는 운전자’로 호도되고 있는 그러한 사회·심리·문화적 병리현상은 해외에서는 꿈도 꿔보지 못할 일이다. 미국의 시민단체에서는 ‘절대 보복운전 하지마라, 화가 난 운전자에게는 눈을 마주치지 마라, 영원히 도착 못하는 것보다 조금 늦게 도착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라…’ 등등의 로드 레이지 십계명을 제시하고 있다는데, 과정(안전) 젖혀놓고 결과(속도)에만 매달리는 문화의 후진성을 언제나 면할지 아뜩해지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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