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신분계급 차별이 엄격했던 조선왕조 시대에 사형(私刑)이란 게 있었다. 말뜻 그대로 개인과 사적단체가 사사로이 범죄자들에게 가하는 제재로 미국에서 백인이 흑인에게 행했던 린치(Iynch)와 같다.
멍석말이와 인민재판이 대표적인 예다. 멍석말이는 마을에 해를 끼친 자, 이른바 ‘공공의 적’을 짚으로 짠 커다란 자리인 멍석에 둘둘 말아 놓고 여러사람이 뭇매를 가하는 벌이다. 그런 다음에는 마을에서 내쫓아버리는 게 상례다.
예전 고향에서의 일화다. 마을의 한 총각이 한밤중에 남편과 별거중인 부인네를 겁간한 뒤 허름한 담장을 뛰어넘어 아랫도리를 추스르다 부인의 “불이야!”소리에 놀라 뛰어나온 이웃집 청년에게 붙잡혔다. 총각은 그 길로 마을회관으로 끌려 갔고, 긴급 소집된 마을 어른들의 준엄한 꾸짖음과 함께 그의 가족 모두를 마을에서 추방시켰던 일이 있다. 멍석으로 말아 두들겨 패지는 않았지만 멍석말이식의 사형이었던 셈이다.
인민재판은 일정한 자격을 갖춘 법관에게 판결을 맡기지 않고 인민 대중을 배심원으로 하여 재판·처결하는 방식의 재판이다. 공산주의 체제 국가의 제1심 재판에 이 예가 많았는데, 우리나라에선 6·25전란통에 북한 인민군들과 그 부역자(附逆者)들에 의해 공공연히 자행되기도 했었다.
사형은 조선중기 이후 성행했던 향약(鄕約) 규정을 어긴 자들에게도 행해졌다. 향약은 문벌이 좋은 양반 사족(士族)들이 고을 농민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중국의 ‘여씨(呂氏)향약’을 본떠 만든 일종의 규약이다. 경북 안동지방에서 행해진 ‘예안(禮安)향약’이 대표적인 예로 퇴계 이황이 서문을 썼다. 이 향약의 대체적인 내용은, 의(義)를 범하고 예를 해치고 고을 풍속을 무너뜨리는 자들을 사형으로 다스릴 수 있게 규정해 놓았다. 죄가 커 매로 볼기를 치는 태장(笞杖) 양이 40대 이상인 경우에는 관아에 신고하고, 40대 이하는 조직의 우두머리 마음대로 곤장으로 다스리고 마을에서 내쫓았다.
요즘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인사청문회로 관가가 어수선 하다. 대통령당선인이 첫번째로 지명한 총리후보자가 낙마를 하고 현 대통령이 지명한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도 공금유용의 덫에 걸려 질기게 버티다 자진 사퇴했다. 두번째 총리후보자로 지명된 이는 “젖먹던 시절의 죄까지 생각날 정도”로 엄격한 사전 검증절차를 거쳤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 인사청문회를 보고 있노라면 흡사 한 죄인을 끌어다 놓고 여러 사람이 뭇매를 가하는 사형의 형국에 다름아니란 생각이 든다. 매질을 하는 그 누구도 후보자의 입장에 서면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텐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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