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이 얻고자 하는 단 하나의 최고 목표는 아마도 행복이 아닐까 싶다. 다만 무엇을 통해서 얻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천차만별일 수 있다. 그래서 공리주의(功利主義) 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은 “행복을 수중에 넣는 유일한 방법은 행복 그 자체를 인생의 목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행복 이외의 어떤 다른 목적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일이다”라고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힘들어서인가 저 유명한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는 “행복이란 그 자체가 긴 인내다”라고 뇌까렸다.
어떤 이는 돈을 많이 모으는 경제력을, 또다른 이는 성공을, 혹자는 건강 혹은 사랑을 행복의 요소로 꼽기도 한다.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생명파 시인 청마 유치환의 시 ‘행복(幸福)’의 후반부 구절이다. 그는 이영도라는 여류 시조시인을 가슴에 들여앉혀 놓고 평생을 지순한 플라토닉한 사랑을 나누었다. 그래서 행복하다고 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세상은 저 그리스 신화 속 판도라(Pandora)의 상자에서 쏟아져 나온 ‘제우스표’ 죄악과 재앙, 불행들이 넘쳐난다. 우리의 옛 동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달걀 한 꾸러미를 들고 장에 가던 소년이 꿈을 꾼다. 이 달걀을 팔아 염소를 사고, 염소를 팔아 소를 사고 마침내 집을 사서 부자가 되는 황홀한 꿈에 젖는다. 소년은 너무나 행복한 나머지 눈을 사르르 감는 순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들고 있던 달걀 한 꾸러미를 다 깨고 만다. 이 일을, 달걀을 어찌 한단 말인가.
그런가 하면 조선조 전기의 명신이자 유학자인 김안국(金安國, 1478~ 1543)은 재물 욕심이 많은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자네나 나나 산다고 해봤자 고작 10여년인데 무슨 욕심이 그리 많은가? 사는데 꼭 필요한 물건은 열가지 뿐이라네. 책 한시렁, 거문고 한 개, 친구 한 명, 신 한켤레, 베개 한 개, 창문 하나, 마루 하나, 화로 한 개, 지팡이 한 개, 나귀 한 마리 일세. 자네가 내 친구가 되어주게나!’
안분지족(安分知足)의 미학이다. 그런데 요즘 20~30대 젊은이들은 행복을 느끼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첫째 경제력, 그 다음이 건강과 사랑, 그리고 성공을 꼽는다고 한다. 그러나 행불행이 모두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 마음 다스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곧 새정부의 ‘국민행복시대’가 올거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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