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칼럼니스트 고규홍 교수

나무는 베지 않으면 죽지 않는
생명력을 지니고
삶의 생기를 주어

고향마을에 가면 마을이 들어서면서 심겨져 굴곡많은 애환의 마을역사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거룩한 나무가 있다.
주민들은 이 나무가 마을발전, 주민의 안녕, 자손의 번영을 돌봐준다는 절대적인 믿음을 보내며 알뜰히 보살핀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주민과 나무간에 얽힌 애뜻한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엮어 ‘나무편지’라는 이름으로 이메일을 통해 독자와의 교감을 나누는 나무칼럼니스트 고규홍 교수를 만났다.

나무의 아름다움에 현혹
나무이야기꾼이 돼

고규홍 씨는 나무칼럼니스트가 된 것이 또 다른 운명이라고 했다.
“전 서강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다가 88년 중앙일보로 옮겨가 99년까지 기자생활을 했습니다. 99년 가을 불현듯 40세가 된 것을 실감하며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대책없이 사표를 냈습니다. 취재여행 중 기억에 남았던 천리포수목원에 들어가 두둑히 받은 퇴직금으로 두어달 묶었습니다. 이때 나무의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나무이야기를 쓰는 칼럼니스트가 되기로 하고 이 길을 14년째 밟고 있지요.”
그는 그후 지금껏 <이 땅의 큰 나무> 등 9편의 나무관련 책자와 <베토벤의 가계부>라는 에세이집을 내놓으며 한림대학과 인하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다.

나무는 자살을 안하는
놀라운 생명력을 지녀

고규홍 씨는 나무를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 나무에 관한 동화적인 이야기만을 쓰지만 나무를 살피면서 나무는 참으로 위대하고 선한 생물이라고 했다.
“나무는 사람처럼 자살(自殺)을 안하고 묵묵하고 굳건하게 삽니다. 2차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원자탄 폭격에도 은행나무 여섯그루가 이듬해 봄에 푸른 싹을 틔워 다시 돋아나는 놀라운 생명력을 발휘, ‘화석식물’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지요. 나무는 사람이 베지 않으면 죽지 않는 불멸의 생명을 자랑하지요.”라며 나무의 생명력을 놀라워 했다.

800살 은행나무 예쁜 모습
8년만에 보여줘

그는 14년 나무관찰여행 중 사진촬영을 끈질기게 거부해 왔던 은행나무와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안동 산골짜기에 있는 800년 된 오랜 은행나무가 있는데 사진찍기 낮가림을 해 애를 많이 먹였습니다. 유독 열심히 찾아가 사진을 찍었건만 예쁘게 나오지 않아 쓸 수 없었어요. 맑은 날 찾아가면 그 골짜기에만 안개가 핀다든가 비가 와 헛걸음을 시켰어요. 어느 무더운 여름날 강원도를 갔다가 포항으로 내려가던 길이었는데 목이 말라 휴게소에서 쉬다가 그 은행나무가 생각나 포항길을 접고 안동으로 갔어요. 8년동안 만나던 중 처음으로 나무앞에서 화창한 날을 봤지요. 정말 사진촬영에 기쁨이 솟구쳐 찍었는데 14년 취재사진 중 가장 아끼는 사진을 찍었지요. 나무가 예쁜 모습을 내보이기 위해 8년 걸음을 부추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나무편지’를 통해 많은 독자와 편지를 나누고 있다. 대장암 말기로 돌아가실 준비를 하고 계신 분은 자신의 편지를 보며 삶의 생기를 얻는다고 답을 보내온다며 편지를 쓰는 것에 대한 소명과 기쁨을 누린다고 했다.

15가구가 3,300만원 모아
지켜낸 느티나무

300년쯤 된 경북 상주시 낙동면 용포리에 있는 느티나무 한쌍. 주민들이 할배·할매 느티나무 옆에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느티나무가 있어 풍년을 보장해 주고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나무에 치성을 들인다고 해서 당장 큰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상주시 낙동면 용포리 평오마을 이장의 말이다. 마을주민들도 이장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을사람들은 이 한쌍의 느티나무를 지키기 위해 가구당 결코 작지 않은 200만원씩 모아 이 나무를 지켜냈다.
마을을 지켜온 이 나무가 2009년 여름 창졸간에 사라지게 됐다. 평오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떠나보낼 수 없었다. 사건은 나무가 자라난 땅주인이 나무수집상에 팔고난 뒤 벌어졌다. 주민들은 할배 할매처럼 친근하게 느껴온 생명체를 떠나보낼 수 없었다.
주민들은 이 나무를 지키고자 상주시청, 상주경찰서에 탄원을 냈다. 그러나 법률상 소유가 나무 수집상에 넘겨진 뒤라 지켜내기 힘들었다.
나무값 1100만원에다 그간 나무이식을 막느라 손해배상 청구금액 모두 3,300만원을 주민이 모아 나무를 지켜냈다.
“우리가 돈이 어디 있겠어요. 대처에 나가 사는 자식들이 보내준 돈으로 이 나무 한쌍을 지켜냈지요.”
나무를 못지키면 조상들의 은혜를 저 버리는 일이라며 가구당 200만원을 모아 지켜낸 것이다.

오십년 만에 꽃을 피운
물푸레 나무

경기 화성시 전곡리에는 350년쯤 된 물푸레나무가 산다. 이 큰나무 아래 집한 채가 있다. 이 집에는 팔순을 내다보는 노파가 혼자 산다.
“나무가 사람 손을 타면서 눈에 띄게 고와졌어. 옛날에는 장정들이 가까이 가지 않던 나무였어. 생김새도 음산했지. 줄기에 구멍이 큼직하게 났잖아. 그 안에 천년이 된 구렁이가 산다고 했거든. 2004년이야, 고추모종을 심다가 나무를 봤는데 꽃이 활짝 피어난거야. 오십년째 여기 살면서 저 나무에 꽃이 피는 것 처음 봤어. 하도 신기해 90된 노인에게 이야기했더니 처음이래. 고목이 꽃이 피었으니 좋은 일이 있을거라 했지. 그러곤 2006년에 한번 더 피었는데 올해는 안폈어.”
이말을 들은 고규홍 씨 귀가 활짝 트였다.
그는 이말을 듣고 문화재청을 찾아가 이 나무의 천연기념물 지정을 건의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받기까지 고규홍 씨와 문화재청간의 숨겨진 뒷이야기를 다 말하기는 어렵다.
생식능력을 잃고 50년 오래 살아온 나무가 새로 꽃을 피어 다시 태어난 기쁨, 그 노고를 감당해낸 나무에 천연기념물의 이름을 안겨준 고규홍 씨는 그 일이 무척 기쁘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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