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 MBC-TV 야구해설위원

한국선수와 젊은이 투지 돋보여 일본추월 확신

한국에 프로야구게임이 도입된지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허구연 씨는 일찍이 부산의 대신초교에서 야구를 시작, 경남중고와 고려대 야구선수를 거쳐 34세에 국내 최연소 청보 핀토스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은 뒤 마이너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 유급코치를 끝으로 화려한 현역을 마쳤다.
평생 야구인으로 살아 야구에 얽힌 많은 경험과 정보를 곁들여 능란한 입담으로 게임의 흐름을 잘 짚어주는 MBC-TV 허구연 야구해설위원을 만났다.
그가 체험한 야구세계 뒷편의 재미있는 얘기를 들어봤다.

프로세계는 비정
성적으로 연봉 책정받아

그는, 프로선수는 돈을 받는 사람이라고 했다. 특히 프로야구선수는 에러 즉 실책을 많이 범하면 시즌 중에도 추방된다고 했다.
“프로의 세계는 비정합니다. 프로야구선수는 성적에 따라 연봉이 책정됩니다. 다른 어느 게임보다 선수기량에 따라 연봉차이가 엄청나게 큽니다. 야구선수처럼 우리모두가 프로정신을 가지고 실책을 저지르지 않고 살아가도록 유념해야 합니다.” 그는 프로는 의지와 힘이 있어야 된다고 했다.
그 힘은 부단한 연습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홈런타자가 되려면 10만번 이상 방망이를 휘둘러야 된다.
빠른 타구를 잡는 것 역시 부단한 연습 끝에 얻는 관성(慣性)으로 볼을 잡게 된다고 했다. 사회에서는 에러를 인정치 않는다면서 국민모두 프로정신으로 나라의 힘을 키워야 한다고 거듭 역설했다.

한국야구인프라 일본 대비 열악
실력 대등해진 것 투지 탓
그는 초교 5학년 때 한·일전을 치르기 위해 일본에 간 적이 있다. 이때 그는 에어컨이 달린 시원한 버스를 탔다. 그리고 신간선을 타고 식탁(食卓)을 내놓고 글씨를 쓰는데 좀체 흔들리지 않는 것을 보고 문화충격을 크게 받았다. 당시 한·일간 야구게임 성적이 7:0, 10:0 심지어는 20:0에 이르는 참패였다.
이런 게임성적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국력차이가 무척 부러웠다.
그는 그후 고교야구 한국대표선수로 일본에 가 휴일인 8·15를 맞았다. 이때 일본측 야구관계자들은 한국 찬탈의 주범인 이토 히로부미 생가방문 관광안내를 추진했다. 이 일정에 불복한 허구연 선수는 일본의 주요 일간신문인 아사히신문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내용이 신문에 보도되어 화제가 되었다.
WBC 세계야구대회시 기아타이거즈의 이용규 선수가 삼루성타구를 잡아내 바닥에 주저앉아 땅을 치며 기쁨에 우는 모습을 연출해 냈다.
이 선수가 운 것은 일본을 물리치고 한국선수 전원 병역면제특권을 따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기 때문이다. 아직도 한국야구 인프라가 열악한데도 이같은 대등한 성적을 거둔 것은 병역면제특전을 준 탓이다. 이 특전을 얻고자 선수들은 살기(殺氣)를 품고 경기에 임하는 때문이란 것을 안 일본야구인들은 이 특전을 몹시 부러워 한다고 했다.

이만수 감독 야구·가정·종교
몰두, 타격삼관왕 차지

허 위원은 요사이 일본을 드나들며 일본 젊은이들 눈이 처진 것에 비해 한국 젊은이들 눈은 초롱초롱한 것을 보고 한국이 일본을 꼭 추월할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며 그 투지를 지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야구계인사중 SK 이만수 감독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 감독은 향이 있고 도전정신을 가진 감동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 감독은 중학생 시절 늦게 야구를 시작했다. 특출한 기량을 가진 게 아니라 뚝심으로 야구기량을 닦아냈다.
이 감독은 야구를 시작한 뒤 지금껏 잠을 5시간밖에 안잔다. 이 감독은 83년 타율, 타점, 홈런부문 최다의 삼관왕 타이틀을 따낸 불세출의 타자이다. 그는 야구, 가정, 종교 이외 다른 일에 관심을 갖지않고 오직 야구에만 몰두해 이같은 화려한 성적을 거뒀다.
이 감독은 야구를 위해 골프, 당구, 바둑마저 버렸다. 허구연 위원은 풍부한 해설자료를 장만하기 위해 야구선수, 감독과 전화 또는 면담을 자주 한다. 이 감독은 야구를 안하는 월요휴무일에 아들과 아내를 따라 시장갔다 온 뒤 허구연 위원의 전화를 받으면서 쌀 한되 값이 얼마냐고 농담을 거는 소박하고 따뜻한 향을 지닌 사람이다. 그는 현역 선수생활을 마치고 미국에 가 시카고화이트삭스에서 코치로 9년간 종사했다. 귀국해 SK의 코치가 되었는데 관객이 적게 들어 관객만원시 팬티를 입겠다고 팬들과 약속했다. 관객만원을 돌파한 뒤 그는 팬티를 입고 관중석을 돌며 환호하며 약속을 지켜낸 감동의 연출을 해냈다.
한국선수가 미국의 코치가 되는 것은 0.009%불과, 마치 좁은 문을 뚫는 것이라 했다. 이 감독은 영어도 제대로 못하며 미국에 갔다.
그는 허 위원과 미국에서 상봉, 감격의 포옹을 했다. 이때 허 위원이 영어도 못하면서 코치를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스틸, 홈런, 캣치 등 야구용어 몇마디로 뱃심좋게 시작하니 영어가 되더라고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그는 이런 도전정신이 몸에 밴 야구인이다.
또한 허 위원은 타자의 몸에 맞는 빈볼에 얽힌 재미있는 얘기도 해줬다. MBC팀에 있던 김인식 선수는 빈볼을 아주 재치있게 맞아내 점수를 올리는 묘기를 지닌 선수이다. 김 선수는 한·일전에서 만루가 된 뒤 대타로 등장, 일본투수가 던진 볼을 기대대로 재치있게 맞아내 승리를 따냈다. 해태 김성환 선수는 롯데와의 싸움에서 홈런을 치고 기고만장 삼루를 걸어 돌아 홈베이스를 밟았다. 이때 부화가 난 최동원 선수는 타석에 섰던 김성환 선수에게 재치있게 빈볼을 던져 부상으로 한달간 출전을 못하게 한 적이 있다. 허 위원은 그밖에 재미있는 야구비화를 많이 들려줬다.

매일 미·일본 게임리서치…
해설영역 넓혀
허구연 위원은 미국의 메이저리그와 일본야구를 이해하기 위해 그간 일본을 103차례, 미국에 100여 차례 다니고 있다.
또 매일 미국메이저 30개팀의 경기를 리서치하며 일본프로야구게임을 밤 11시까지 본 뒤 귀가한다.
이런 시간투자로 해설연봉을 남보다 2배이상 받아낸다.
그는 야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하는 것이며 게임중 본의아니게 희생타를 쳐야 하는데 이 또한 잘해주는 희생의 정신을 잊지 말아야 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선수는 술, 담배, 게임과 여인의 유혹을 뿌리쳐야 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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