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 지고, 들고 어머님은 소보다 힘세고 끈기있다.’ 개화기의 한국의 농촌여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어릴 적 어머님의 하루일과를 생각하면 사모곡의 한 구절이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다.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생활환경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농촌여성이 지고 가는 삶의 무게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70년대 초 우리는 하루 세끼를 해결 못하고 힘겹게 보릿고개를 넘겨야 했다. 당시 잘 살아보자는 국민운동은 한줌 의 쌀이라도 모아서 새마을운동 종잣돈을 마련하자는 운동이 벌어졌다. 절미항아리에 한줌 쌀 넣고 남는 쌀로 아침밥을 짓던 그 시절 어머님이 생각난다. 절미 항아리는 어머님의 알뜰한 삶의 상징이었다. 한 숟가락의 쌀이라도 아껴, 잘 살아보자고 발 벗고 나섰던 농촌여성 절미운동이 종잣돈이 되었고 새마을운동을 성공시킨 밑거름이 되었다.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풍요로운 농촌은 생각해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고추 당초 맵다 해도 시집살이가 더 맵다’는 그 시절 며느리들은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오늘의 농촌을 일구어 놓은 개척자들이다.
최근 급속한 다문화사회로 진입하면서 우리나라 다문화 가정이 23만명에 이르고 있으며 농촌다문화가정이 40%, 약 8만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이주여성들이 일확천금을 꿈꾸고 왔지만 농촌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아 쉽게 포기하고 이탈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익히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시어머니세대가 젊었을 때 어렵고, 근면하고, 알뜰했던 ‘절미항아리 정신’을 물려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들은 우리농촌의 희망이요 미래의 어머니다. 그들에게 근면하고 검소한 한국의 어머니상을 먼저 물려주어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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