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인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유통이사

윤 정 인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유통이사

"유통구조혁신은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두터운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김장철이 임박한 요즘 전통시장에서 배추 1포기 가격은 상품 기준으로 3,500원 정도이다. 이 배추의 생산농가 수취가격은 1,000원 수준이라 한다.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두 가격의 차이, 즉 2,500원이다.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배추 생산량이 넘쳤던 작년 이맘때와 비교하면 포기당 1,000원 이상 비싼 가격이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배추는 산지유통인이 생산농가가 정식해서 경작 중에 있는 배추를 포전거래를 통해 구매한 이후 수확기까지 직접 재배한다. 즉 산지유통인이 생산자의 역할을 대신한다. 이러한 거래방식이 고착화된 이유는 농업인구가 고령화되어 영농 활동을 대신해 줄 사람이 필요해진 점, 배추가격 등락에 따라 가격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이점이 반영된 결과다. 산지유통인이 도매시장에 출하한 배추는 경매과정을 거쳐 낙찰받은 중도매인과 소매상을 거쳐 비로소 소비자를 만나게 된다.
그러면 소비자 지불가격의 결정원리는 무엇일까? 도매시장 경매과정을 거치는 경우에는 도매시장 이전 단계에서 발생하는 유통비용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도매시장 경락가격에 도매상(중도매인)과 소매상 단계에서 발생하는 운송비·감모 등 직접비와 점포관리비·임차료 등 간접비 그리고 도매상과 소매상이 취하는 이윤이 합해진 가격이 최종적으로 소비자 지불가격이다.
도매단계 이전에 발생되는 유통비용은 소비자 가격을 결정하는 변수라고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도매시장에서의 경락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생산자나 산지유통인이 부담한 비용을 보전하는 수준을 고려해서 경락가격이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매시장을 거치지 않고 산지에서 소매상으로 직접 공급되는 경우에는 어떨까? 주로 대형유통업체의 거래방식이 이에 해당되나 이 경우 역시 소비자 지불가격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도 가격결정 기준은 대부분 가락동 도매시장의 경락가격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도매상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도매단계에서 발생하는 유통비용이 절감될 수 있지만 필요 물량 조달을 위해 개별 공급자를 찾는데 소요되는 거래비용이 증가하게 되므로 소비자 지불가격 인하 효과는 저감된다.
생산자가 적정한 이익을 안정적으로 취할 수 있고 소비자 역시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를 실현하는 것이 유통구조혁신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하면 이상주의적인 발상일까? 분명한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두터운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aT가 운영하는 사이버거래소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농산물 B2B 거래시스템을 가동한지 3년만에 1조원의 거래규모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중간유통 단계를 파괴하는 혁신적인 거래 방식이 연착륙하고 있다. 금년부터는 중소형 슈퍼마켓 등 골목상권 및 외식식재료 업체와의 직거래시스템도 가동 중이다. 공영 도매시장의 경우에도 거래방식의 일대 변혁을 시도하고 있다. 생산자와 협의를 통해 가격을 결정하는 정가·수의매매 거래방식 도입을 통해 공급량 변화에 따라 경락가가 요동치는 현행 경매방식의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농산물 유통구조혁신은 복합적으로 얽힌 수많은 난제를 풀어야 하는 매우 어려운 과제이지만 고민하고 행동하면 해답은 반드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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