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내시의 사전풀이를 보면, ‘불알이 없는 사내’로 되어 있다. 즉 거세(去勢)된 남자란 뜻이다. 일명 환관(宦官)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애초부터 같은 의미로 쓰이진 않았다. 내시는 왕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내시부(內侍府)소속의 고위직 관료였고, 환관은 거세된 사람들로서 궁중에서 소제와 파수 등 허드렛일을 하는 노예와 같은 존재였다.
우리나라에서 중국의 환관제도를 들여와 왕실 친위조직인 내시부를 설치한 것은 고려 의종 때로 알려져 있다. 이때의 내시부 내시는 왕의 최측근 세력으로서 왕을 수행하고 국정 전반의 특수임무를 담당하는 세력집단이었다. 성리학을 들여온 안향(安珦),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金敦中), 윤관의 아들 윤언민(尹彦旼), ‘해동공자’ 최충의 손자 최사추(崔思諏), 최영 장군의 5대조 최유청(崔惟淸) 등이 고려 때 권좌에 있던 내시였다.
그러던 것이 원나라 간섭기에 그들의 영향으로 환관 중에서 내시로 임명되는 사례가 빈발하면서 고려말의 환관들도 정치적인 득세를 하게 되고, 내시부는 자연 환관들이 장악한 채로 조선시대로 이어지게 된다.
조선시대의 내시부는 궁궐내의 식사감독, 명령 전달, 대궐문 수직(守直), 소제 임무를 담당하던 관청으로 실무자는 모두 내시였고, 정원은 140명이었다. 특히 조선조 정조 때에는 대전장번(大殿長番), 대전출입번, 왕비전출입번, 세자궁장번, 세자궁출입번, 빈궁출입번(嬪宮出入番) 등의 업무를 모두 내시가 맡아했다. 이때의 내시들은 당연히 모두가 거세된 환관들이었다.
이들의 직급은 최고 우두머리가 상선(尙膳)으로 영의정 직급으로부터 세단계 아래인 종2품(從二品)의 고위직이었고, 최하위 직급은 종9품의 상원(尙苑)이었다. 이들은 비록 거세되긴 했어도 처·첩을 거느리고 역시 거세된 어린 아이를 양자로 들여 대를 이어갔다.
최근 고려말~조선조의 환관 777명이 올라있는 환관족보 <양세계보(養世系譜)>를 통해 내시의 수명을 양반가 남성들의 수명과 비교한 대학교수들의 연구논문이 발표돼 화제다.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내시들이 양반들보다 평균 14~19년을 더 살았으며, 조사대상 중 3명은 각각 100세, 101세, 109세까지 장수했다는 것.
의학적으로 보면 인간이나 동물이나 남성호르몬이 심장질환 발생 위험을 높이고 면역기능을 약화시키는 등의 수명단축 효과가 있다는 것이 유력한 가설이고 보면, 내시들의 장수는 ‘거세’로 남성호르몬 분비가 억제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니… 혹여나 장수를 머리에 두고 ‘거세’를 꿈꿔보는 이들도 있을지 모를 일이다. ‘어차피 힘없는 늙은 몸인데…’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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