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1979년 10월26일 저녁7시40분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安家). 느닷없는 몇방의 총성과 함께 대통령의 만찬자리는 유혈이 낭자한 아수라장이 되었다.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가 ‘유신(維新)의 심장’ 박정희 대통령을 권총으로 시해한 이른바 10·26사건이다.
결국 이날의 저녁자리가 18년간 철권통치로 일관하던 박정희시대를 마감하는 ‘최후의 만찬’이 되었다.
이 망연자실할 졸지의 국가적 유고(有故) 앞에서 온 나라안이 경기(驚氣)로 몸을 치떨듯 하는 상황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 궁금해 한 건 대통령의 저녁상 차림이었다. 이때 알려진 술이 ‘시바스 리갈(Chivas Regal)’이라는 양주였다. ‘시바스 리갈’은 스코틀랜드의 시바스 브라더스사가 만든 프리미엄 스카치 위스키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이 유독 좋아한 술은 막걸리였다. 시해되던 날 낮에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 후에 점심반주로 곁들인 술도 막걸리였다. 그것은 아마도 개발시대의 주역답게 막걸리가 주는 서민친화형 이미지를 밀짚모자와 함께 머리에, 가슴에 각인시키려는 의도도 다분히 깔려있지 않았나 싶다. 그런 그가 ‘막걸리 대통령’으로 이미지를 굳히게 된 일화가 있다.
박대통령이 집권한 지 얼마 안되었을 때 일이다. 하루는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 등 측근 몇몇을 이끌고 경기도 고양에 있는 한양컨트리클럽에 골프를 치러 나온 적이 있었다. 골프가 끝나자 대통령 일행은 골프장 주변에 있는 한 허름한 주점을 찾았다. ‘실비옥’이란 집이었다. 이때 수행원 하나가 막걸리 주전자와 북어 한 마리를 사들고 와서는 술집 주인에게 “술 한잔 먹게 된장 좀 달라”더라는 것. 그때 사들고 온 막걸리가 인근에 있던 능곡양조장의 술이었는데, 술맛이 좋았던지 그때 이후로 청와대에서 계속 술을 대달라고 해 시해되기 전날까지 14년 간 줄창 특별관리 한 막걸리 두어말 씩을 보냈다는 게 양조장집 사장 박관원(朴寬遠·81)옹의 얘기다.
최근 미국 백악관이 ‘백악관표 맥주’ 2종류의 제조법을 공개해서 화제다. ‘아무 때고 함께 한잔하고 싶은 대통령’이라는 친서민적 이미지를 높이려는 의도가 깔린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의 백악관 맥주 양조장에서 직접 제조한 맥주의 하나는 ‘백악관 허니 브라운 맥주(White House Honey Brown Ale)’. 이 맥주에는 맥주보리인 맥아 추출액에 벌꿀, 석고, 효모균, 옥수수당 등이 들어간다는데, 특히 벌꿀 특유의 달콤한 맛이 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심은, 천심은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닌데, 이래저래 우리나 그네나 ‘표밭갈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밭갈기도 거져 쉽게 되는 게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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