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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백중(百中)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박광희 기자  |  history8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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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8.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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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더위가 물러가고 찬바람이 난다는 처서(處暑)가 지났는데도 무더위와 폭우가 번갈아 자맥질 하듯 남북을 오르내리며 기승을 부리고 있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의 곡식도 준다’는 옛말이 어긋남 없어 농부의 시름골도 깊어만 간다.
옛날 이즈음엔 백중날(百中~, 百衆~)을 큰 명일(名日)로 쳤다. 음력 7월 보름날로 백종(百種, 白踵), 혹은 정월보름인 상원(上元)과 시월보름인 하원(下元)의 중간이라 하여 중원(中元)이라고도 한다. 올해는 9월1일에 들었다.
백중, 백종은 글자뜻 그대로 백가지 곡식종자를 갖추는 풍속에서 유래됐다고는 하나 고려 때 백중날에 행하는 불공의식인 우란분(盂蘭盆, 범어 ullambana), 또는 우란분회 설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즉, 석가모니의 10대 제자의 한 사람인 목련존자(目連尊者)의 어머니가 이승에서 죄를 짓고 아귀지옥에 떨어져 있을 때 목련이 모든 중들을 달래어 대중들에게 공양을 올리게 하여 그 영혼을 위로하고 어머니를 아귀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극락왕생 시켰다는 ‘목련구모(目連救母)’ 설화다.
음력7월 보름날 불공의식으로 행해진 이 백중맞이는 점차 민간으로 전파돼 백중날이 되면 백가지 음식을 만들어 굶주린 망령인 아귀에게 시주해 고통을 구제하고 조상들의 명복과 극락왕생을 비는 커다란 축일(祝日)로 굳어졌다. 특히 이 무렵에는 논매기 등 바쁜 농삿일이 대충 끝난 뒤여서 농부들의 발뒤꿈치가 하얗다는 뜻으로 ‘백종(白踵)’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일설에는 양반가에서 ‘호미씻이’잔치를 베풀어 주어 여름내 뙤약볕에서 허리 한 번 펼날 없었던 머슴들을 이날 하루 쉬게 했다 하여 ‘머슴날’이라 했다고도 한다.
홍석모(洪錫模)가 지은 <동국세시기>(1849)에 보면, 이 시절 음식으로 개[狗]장국을 으뜸 보양식으로 꼽았다. ‘개 잡아 파를 넣고 푹 삶은 뒤 고춧가루를 타고 밥을 말아서 시절음식으로 먹는다. 닭이나 죽순을 넣어 끓이면 더욱 좋다. 이열치열로 더위 물리치고 몸의 허함을 보강할 수 있다’하였다.
그리고 아욱과로서 백마(白痲)라고 불리는 어저귀에 청채(靑菜)와 닭고기를 섞어 끓인 어저귀국, 미역국말이국수, 흰떡볶이, 호박전, 참외, 수박, 복숭아도 더위로 입맛을 잃은 미각을 되살려 주던 이 시절의 별미 먹거리들이었다. 특히 애호박과 돼지고기를 넣어 볶거나 굴비 대가리를 섞어 볶으면 그만인 별미 흰떡볶이 맛이라니… 지금은 시름시름 그 조리법이 새세대의 입맛에 맞게 달라져 있어 금석지감(今昔之感)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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