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이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늙는 것을 반겨할 사람은 없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명체의 불변의 이치를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게다가 늙어도 어떻게 늙느냐, 말하자면 ‘노추(老醜)’가 되진 말아야 한다는 한결같은 바람을 적어도 머리속에 만큼은 꽁꽁 저며두고 살아간다.
조선조 중기의 문인정치가 송강 정철(1536~1593)은 친구인 우계 성혼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피폐한 노년의 모습을 이렇게 적고 있다.
‘초년에는 명리(名利)에 끌리고 중간에는 부모 병환으로 근심걱정이었으며, 늦게는 얻기 어려운 좋은 세월을 또 술과 헛된 욕심으로 헛되이 보내고, 어느 덧 이런 노년에 이르렀으니… 늙바탕에 이미 병이 심하고 정력이 또한 따르지 못하여 앞의 것을 뒤에 곧 잊어버려 백의 하나도 기억을 하지 못합니다.’
그는 과한 술로 인해 자신의 총기와 이미지를 허물어뜨리고 정신적으로 불우한 말년을 보냈다. 일찍이 성현 공자는 <논어>위정편(爲政篇)에서 이렇게 설파했다. ‘나는 열다섯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삼십에 섰으며, 사십에 미혹되지 아니하고, 오십에 하늘의 뜻을 알고[知天命] 육십에는 무슨 소리를 들어도 흔들리지 않으며[耳順], 칠십에는 마음이 내키는대로 욕심껏 따라도 아무런 거스름이 없다’하였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작고한 소설가 김동리(金東里)는 자전에세이 ‘예순 나이 무렵’에서 ‘어두운 가을 저녁, 낯선 주막에서 혼자 막걸리를 기울이고 있는 내 가슴속이 왠지 모르게 텅 빈 듯했다. 못 견디게 외롭고 쓸쓸하고 허전했다.…그러나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면…’ 하며 어두운 향수에 젖어 흔들리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말년에 치매예방에 좋다하여 우리나라의 산이름과 강이름을 매일 수십번씩 시조 읊조리듯이 외워댔다고 한다.
얼마 전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는 이탈리아의 학자이자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엉덩이 관절에 문제가 있어 항상 지팡이를 짚어야 하고, 수염이 콧구멍을 찔러 잠을 못자는 바람에 모두 밀어 버렸다”고 쌩쌩한 유머를 날리고는 “여든 살 먹은 지식은 너무 늙었다”고 겸손해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어디 늙은 지식인가. 우리시대 노인은 지혜와 슬기, 그리고 삶의 진득한 경륜에서 몸에 배인 따뜻한 균형감각을 가진 세대다. 그 세대들이 작가 박범신의 말대로 “오늘도 ‘무서운 자식들’과 ‘똑똑한 아내’와 자본주의 경쟁이 주는 ‘잔인한 세계구조’에 가위눌리면서 저기, 어둑한 베란다나 냄새나는 쓸쓸한 뒷골목에 피신해 담배 한 대, 소주 한 잔으로 남몰래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 중”이다. 딱하고 쓸쓸한 노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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