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후인정, 귀화출신으로 처음 올림픽 참가

<후인정 :1974년생, 신장 198cm, 천안 현대캐피탈 소속, 2000년 시드니올림픽 대표,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금메달
<사진출처:현대캐피탈 배구팀 홈페이지>>

1995년 국적 취득
수원 후(侯)씨 시조돼

<사진출처:현대캐피탈 배구팀 홈페이지>

지난달,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최종 예선을 치르고 있는 최강희 축구국가대표 감독은 브라질 출신의 에닝요(전북 현대) 선수를 발탁하고 싶다고 말했다. 탁월한 골 감각으로 공격축구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에닝요 선수도 태극마크를 강력히 희망했지만 대한체육회는 ‘국적법 제5조에 명시된 국어능력 및 풍습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 국민으로서의 기본 소양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며 특별귀화에 제동을 걸었다. 외국국적의 스포츠 선수가 다른 나라에 귀화해 국가대표가 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스포츠계에서 외국인 출신으로 국가대표가 된 최초의 선수는 누굴까?
답은 배구선수 후인정이다. 수원 후(侯)씨를 본으로 하는 그의 성씨는 생소할 따름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수원 후’라는 본을 가진 사람은 국내에 열 명도 안 되기 때문이다.
배구선수 중 현역 최고참(1974년 생)이자 국가대표출신이며 현재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소속 후인정 선수가 이 성(姓)씨의 시조가 된다.
후인정은 통렬한 스파이크로 ‘스커드 미사일’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반 팔 선수복을 구태여 또 접어 민소매로 만들어 입고 경기에 나서 ‘나시(민소매) 인정’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유쾌한 사람이다. 워낙 고참이라 후배들은 그를 후 옹(翁)으로도 부른다.
“아버지는 정말 탁월한 배구선수였죠. 하지만 대만 국적의 화교출신이라 국가대표가 되지 못했어요.” 후 선수는 어렸을 적, 전(前) 선경 인더스트리 감독까지 지낸 아버지(후국기)의 플레이를 떨리는 가슴으로 바라보며 자라왔고 자신도 배구선수의 길을 걷게 된다. 아버지는 인정을 대한민국 배구 국가대표로 키워내기 위해 1995년 아들을 귀화시켰다.
후인정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경기대학교를 졸업한 1996년 현대자동차서비스 배구단 (현재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에 입단, 지금까지 배구선수로서 출중한 기량을 과시해 왔다. 프로 출범 원년인 2005년, 정규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MVP로 선정됐고 2005~2006 시즌과 2006~2007 시즌에는 2년 연속 챔피언 결정전 우승에 기여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태극마크를 달고 당당히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해 아버지의 꿈이자 자신의 ‘코리안 드림’을 이뤄냈다.
후인정 선수 외에 탁구의 당예서 선수가 국가대표로 2008 베이징올림픽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해 여자탁구 단체전 동메달을 획득했고, 석하정 선수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여자 탁구 단체전 은메달을 따냈다. 남자농구의 이승준, 이동준(31, 오리온스) 쌍둥이 형제와 문태종 선수도 귀화 후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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