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핑크칼라(pink collar)’는 전통적으로 여성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직업군을 이르는 말로 미국사회에서 생겨난 신조어다. 하얀깃의 와이셔츠를 입는대서 사무직에 붙여진 ‘화이트칼라’, 생산직 육체노동자를 이르는 ‘블루칼라’에 빗대어 만들어진 말인 듯 싶다.
예전에 할머니와 어머니는 남자식구들은 부엌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부엌살림살이는 의당 여자의 몫이고, 남자는 모름지기 밖에서 큰 일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처럼 가사분담이니 어쩌구 하며 설겆이라도 거들 양이면 “에구, ×× 달린 놈이 저렇게 용렬해서야 어느 짝에 써먹누, 쯧쯧…”하면서 혀를 찼다.
그렇듯 우리 사회에서는 가정과 사회에서의 남자·여자의 몫과 역할이 분명하게 구분되어져 있었다. 직업 역시 남·녀가 확연하게 나뉘어져 있었다.
은행 창구는 여상고를 나온 여성들의 몫이었고, 전화교환원, 미용사, 음식점 주방 요리사, 패션디자이너, 간호사, 초등학교교사 등등의 직업들이 거의 여성들의 독무대이다시피 했다. 이들 직업들이 대부분 여성의 섬세한 감각과 모성애적 헌신을 필요로 하는 직종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시대가 바뀌고 삶의 양식이 점차 서구화 되어 가면서 전통사회의 틀에 갖혀 있던 직업의식에도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과거 안방여자의 전유물이다시피 했던 가위가 남자 손에 들려져 옷감을 자르고 머리를 자른다. 별 몇개 이상의 최고급 호텔 주방의 캡틴은 거의가 남자들이고, ‘백의의 천사’로 불린 간호사 영역에도 당당하게 남성들이 잠식해 들어와 있는 게 요즘의 세태다. 이들은 부(富)와 명예를 한 손에 거머쥔 성공모델로서 이 시대 젊은이들의 ‘로망’이 되어 있다.
최근 미국에서도 과거 여성들이 대다수 차지해 온 직업군인 ‘핑크칼라’에 남성들이 대거 진출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즈가 보도했다. 남성들의 진출이 눈에 띄게 증가세를 보인 20개 직종 가운데 8개가 은행창구직원과 안내원, 간호사, 초등학교 교사 등의 ‘핑크칼라’ 직업군에 속한다는 것. 이같은 현상은 건설·제조업 등 전통적인 남성 일자리가 줄어든 탓도 있지만, 이들 ‘핑크칼라’직종이 고용이 안정적이고, 업무강도나 스트레스가 적으며 자기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은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특정 직업에 대한 성(性) 고정관념이 많이 허물어진 데서 비롯된 현상으로 보여지는데, 혹 이런식으로 가다가는 남성도 대리출산을 하는 시대가 오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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