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4.11 총선 이후 신문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낯선 단어가 ‘제너포비어(Xenophobia)’다. 사전적 풀이로는 ‘병적인 외국인 혐오증’을 말한다. 손님·외국인·외래어·이종(異種)이란 뜻의 결합사인 ‘제노(Xeno)’ 혹은 ‘젠(Xen)’과 병적 혐오·공포증의 뜻을 가진 ‘포비어(phobia)’의 합성어다.
이 단어가 급작스레 언론에 떠오른 건 필리핀 출신의 귀화인인 이자스민 씨가 새누리당의 비례대표의원으로 선출되면서부터. 안티 성향의 극렬 네티즌들이 입에 담기도 험악한 모욕적인 허위사실을 유포시키며 인종차별적 공격을 퍼부으면서 비롯됐다.
사실 이같은 외국인 혐오증 현상은 어제 오늘에 뜬금없이 생겨난 것은 아니다. 이미 수백 수천년 전 전통왕조시대부터 수백 차례의 크고 작은 외침을 당해오면서 하층 민중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생성된 피압박 민족으로서의 피해의식과 자기열등의식의 저항적 표현이었다.
지배층은 지배층대로 지배권력의 정통성을 굳건히 세우기 위해 ‘단일민족’운운 하며 민족의 결집과 대동단결을 꾀했지만, 그 수많은 이민족과의 난리를 겪은 마당에 ‘단일민족’이란 표현이 합당키나 한 것인지는 사뭇 의구심이 든다.
우리 역사상 특기할 만한 귀화인으로는 고려 충렬왕 때인 1275년 고려에 귀화한 장순룡(張蕣龍)을 들 수 있다. 그는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의 딸로 충렬왕비가 된 제국대장공주를 따라 고려에 온 ‘삼가(三哥)’라는 아랍인으로, 고려에 귀화하면서 충렬왕으로부터 ‘장순룡’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고려인이 됐다. 그는 충렬왕의 신임을 듬뿍 받아 대장군 벼슬에까지 올랐으며, 후손들도 대대로 벼슬길에 올랐는데, 개풍군 일대의 덕수현(德水縣)을 식읍으로 하사받고 덕수를 본관으로 삼아 덕수장씨의 시조가 됐다. 지금도 일명 ‘사우디 장씨’로 불리는 덕수 장씨 후손들이 28대째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석근리라는 마을에 모여 살고 있다.
‘조선의 희망이기를 바라며’ 1885년 이땅에 처음으로 신교육 학당인 이화학당을 세운 미국인 여성선교사 스크랜턴이 살던 집은 피부색이 하얀 푸른 눈의 서양여자가 사는 집이라 하여 ‘흰도깨비집’이라고 부르며 흡사 흉가를 대하듯 누구하나 얼씬도 하지 않았다. 6·25동란 때는 흑인 미군병사들이 시골 부녀자를 잡아먹는다 하여 토굴 속에 숨는 웃지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미국으로 이민 가 세계은행 총재가 된 이는 위대하다면서도 이땅에 뿌리내리고 사는 20만 결혼이주민 여성들을 비하하는 소아적(小我的) 이중성을 버리지 않는 한 자고새면 입버릇처럼 뇌까리는 ‘세계화’는 강건너 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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