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반달’하면 누구나의 머리에 먼저 떠오르는 것이 동요 ‘반달’이다.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햇님이 쓰다 버린 쪽박인가요/꼬부랑 할머니가 물 길러 갈 때/치마폭에 찰랑찰랑 채워 줬으면~♪♬’
이 동요는 일제강점기 때 동경음악학교에 유학했던 윤극영(尹克榮)이 1925년 같은 제목의 동요집을 펴내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역사상 민초들의 지탄을 받았던 ‘왕의 반달’도 있었다. 조선조 제24대 왕인 헌종(憲宗, 1827 ~1849, 재위 1834~1849)은  순조의 손자로 여덟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는데, 열 살 안팎의 철없는 나이 때부터 여자를 좋아해 궁궐 안의 많은 여인들이 어린 왕의 총애를 받기 위해 앞다퉈가며 열을 올렸다.
그러나 왕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궐 밖의 양가 규수 중에서 미색(美色)이 빼어난 아녀자를 가려 뽑아 ‘반월(半月, 반달)’이라는 이름을 지어 창덕궁건양재 동쪽 한구석 조용한 곳에 정자를 지어 들여앉혀 놓고는 주색(酒色)에 빠져들었다.
이러한 왕의 문란한 행동거지를 비꼬아 궐 밖에서는 이런 노래가 유행했다.
‘당당히 홍의(紅衣)입은 정초립(鄭草笠)이/계수나무 능장(稜杖) 짚고/건양재로 넘나든다 반달이냐 보름달이냐/네가 무슨 반달이냐 초생달이 반달이지’
결국 헌종은 밥 먹듯 호색행각을 일삼다 스물 네살의 나이에 자식 하나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했다. 그 뒤를 이은 왕이 바로 ‘강화도령’ 철종이다.
지난 주 또하나의 반달이 졌다. 가요계 원로인 반야월(半夜月·본명 박창오)선생이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반야월’은 물론 예명(藝名)이지만, ‘반야(半夜)’의 사전적 풀이는 ‘한밤중’, 혹은 ‘반밤’을 이름이니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한밤중에 뜬 달’이랄 수도 있고 ‘밤에 뜬 반달’이랄 수도 있다. 정작 본인은 ‘못난’ 자신의 몸을 낮추는 하신(下身)의 예로서 ‘반야월’이라 작명했다니, 딴은 대중가요 작사가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 주는 예명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생전에 ‘아내의 노래’ ‘산장의 여인’ ‘소양강처녀’등 무려 3000여곡의 대중가요 노랫말을 남겼다. 그중 레코드 취입차 일본으로 건너가던 날 어머니의 타계 소식을 듣고 임종도 못한 불효자식의 뼈저린 한을 눈물범벅으로 노래한 ‘불효자는 웁니다’는 시대를 초월한 ‘사모곡(思母曲)’으로 남았다.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오실 어머님을/원통해 불러보고 땅을치며 통곡해요/다시 못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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