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효과음의 살아있는 전설 사운드 디자이너 김벌래 씨

“함석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가장 좋아”

음향전문가 김벌래 씨. 160이 안 되는 키에 몸무게도 55kg 남짓한 왜소한 체구.
하지만 그는 음향창조의 거인이자 소리에 예술을 입히는 마에스트로다.
고3때 연극판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그에게 고인이 된 이해랑 선생이 “벌러지만한 놈이 잘 기어 다니네. 야! 벌러지야 담배 한 갑 사와”라고 한 것이 원래 김평호란 이름을 김벌래로 바꾸게 된 계기가 됐다.
그는 잡을 수 없고 볼 수도 없는 삼라만상의 온갖 소리를 천재적인 감각으로 이미지화 하고 형상화 해 냈다. 음향의 달인 김벌래 씨의 인생이야기다.

콘돔으로 만들어낸 불멸의 효과음
콜라병 따는 소리가 그렇게 청량하고 상쾌하고 유쾌할 수 있을까? 더구나 상표인 ‘펩시’의 어감을 어떻게 그리도 잘 살려냈는지! 김벌래를 이야기 할 때 콜라 광고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 이야기는 워낙 잘 알려진 얘기라서...수 백 번도 더 한 것 같은데.... 원!”
하지만 또 듣고 싶은, 들을 때마다 새롭고 재밌는 그 이야기...콘돔, 백지수표, 그리고 수도 없는 시도 끝에 탄생한 핍! 쉬~~~~하는 그 불멸의 효과음. (그 소리를 어찌 글로 표현할 수 있으랴)
“‘마시면 상쾌하고, 마시면 기분 좋은 소리’를 만들어보라는 거야. 막연하고 황당하지. 그런데 웨이터들이 맥주병 따는 소리가 맑으면서도 통쾌하게 ‘뻥’하면서 듣기 기분 좋잖아요? 그래서 해봤는데 시원찮더라고...소주병도 해봤지..밤새워 해봤는데 마음에 안 들었어요. 막상 녹음해보니 영 이상했죠.“
우리 목소리를 녹음해 들으면 영 어색하듯, 실제 듣는 가청주파수와 녹음해서 듣는 소리는 많은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풍선을 불어 담뱃불로 터트려보고, 바늘로도 터트려봤는데 풍선이 너무 얇고 약해 원하는 소리가 나지 않았단다. 그래서... 좀 더 질긴 풍선류(?)를 생각하다가...
“콘돔밖에 없겠더라고. 약방 가서 한 30개 달라했더니 약사 얼굴에 ‘아니 이런 조그만 놈이 뭘 이렇게 많이!’라는 표정이 역력한 거라(웃음)”
산아제한이 시대적 과제이던 그 당시, 김벌래는 기지를 발휘해 영등포구의 가족협회를 찾아갔다. “무료로 100개짜리 한 박스를 주더라고”
그림이 그려진다. 콘돔을 불어, 무수히 불어, 한 겹으로, 두 겹으로, 여러 겹으로, 바람을 덜 넣었다가, 터질듯 꽉 넣었다....1초 남짓한 소리를 위한 수 백 번의 터트림이....
그렇게 ‘소리’는 탄생했다.
얼마나 만족했는지 의뢰업체에서는 그에게 백지수표를 보냈다. 처음에는 회사가 실수한 거라고 생각했단다.
“물어봤더니 맘대로 쓰라는 거라는데, 당시 직장인 월급이 한 3만원 됐거든요. 이어령 선생에게 얼마를 써야하냐고 물어봤죠. 서양인들이 동양 사람은 체면 때문에 많이 못쓴다는 것을 간파하고 일부러 그렇게 준다는 거야. 팍 팍 쓰라 그러더라고요. 구파발에 집하나 갖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당시 60평짜리 주택이 100만원했어요. 차마 100은 못쓰고 98만 5천원을 썼죠. 아직도 큰 애는 그  열 배 썼어도 받았을 거고, 그럼 큰 부자 됐을 거라고 타박입니다(웃음)” 당시 그의 나이 21살 때였다.

효과맨으로 인생 ‘터닝~’
그는 체신고등학교를 나왔다. 기숙사에 밥까지 공짜로 먹고 학업을 마친 빚(?)으로 체신부에서 3년은 의무적으로 일해야 했다. 말단으로 전보치는 일을 하며 밤에는 여전히 연극판을 기웃거렸다. 고 이해랑 선생은 “야! 니네 집은 거울도 없냐? 그 꼬락서니로 무슨 배우야!”라고 하셨어요. 그때 마침 동아방송 성우 1기 모집 공고가 나서 거기 지원했죠.“
전원주, 사미자, 김을동, 박정자 씨 등이 그때 합격한 분 들이예요.“ 
성우는 외모와 상관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인생은 엉뚱한 쪽으로 흘러갔다.  
“사부님처럼 모시던 신재훈 선생이 ‘성우는 맘을 접고 제작부에서 일해’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김벌래는 효과맨이 됐다.
“라디오 효과음이란 게 참 재밌죠. 사극 칼싸움 장면은 두 손에 식칼을 들고 챙챙 하며 부딪쳤죠. 비오는 소리는 키에 콩을 올려 흔들어댔고요, 총소리는 그야말로 화약을 망치로 두드려서 냈어요. 타이밍이 안 맞으면 바로 NG죠.
가장 기억나는 일은 이순재 씨(당시 성우생활을 했다) 일인데요, 칼싸움 장면에서 칼을 마구 부딪치던 중 자루에서 칼날이 쑥 빠져 이순재 씨 쪽으로 날아가는 거예요. 얼굴을 살짝 비켜 벽에 꽂혔어요. 뭔 사고라도 났었더라면 어휴~ 지금의 대배우 이순재 씨는 어찌 됐을까요?“
한창 효과맨으로 신명나게 일하던 1961년, 마침내 대한민국에도 TV 방송국이 개국한다.

미치지(狂) 않으면 미치지(及) 못한다
TV 시대가 열리자 시각에 청각(효과음)을 입히는 또 다른 영역이 생겨났다.
특히 광고 분야에서 효과음은 중요했다.
기억난다. 그 소리들!
트라이 언더웨어 광고에서 이덕화가 문을 ‘탕~~~’하고 치는 소리, 어느 치약광고에서 혀로 이를 훑으며 내는 ‘뽀드득’ 소리(풍선에 물을 묻혀 훑은 소리란다),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라는 멘트가 나오기 전 ‘촤촤’ ‘삭삭’하며 입자들이 내는 소리.....숱한 소리 소리들이 그의 작품이다. 비슷한 소리같지만 미묘한 ‘맛’의 차이는 김벌래 특유의 상식을 뛰어넘는 감각에서 나온다. ‘상식 비틀기’다.
“빅히트를 친 KT의 광고 olleh!는 hello를 뒤집은 겁니다. 전화할 때 가장 많이 쓰는 소리가 바로 ‘Hello!’(여보세요) 잖아요? 우리 곁에 있는 일상을 조금만 비틀면 창조물이 나오죠.” 아이디어들은 그의 일상에서 나온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그 유명한 굴렁쇠 퍼포먼스에서 정적 속에 울리는 한 줄기 ‘빛’같은 금속성 소리도 그의 작품이다.
“눈 떠서 잠들 때까지 소리만 생각하니까요.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자동차 엔진 소리....세상의 모든 소리들이 저에게는 탐구의 대상이죠. 심지어 해인사에서 새벽 스님들의 똥 누는 소리까지 녹음 했던 걸요.”
그의 저서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뜻)의 뜻이 곧 그의 인생이었다.
그도 어느덧 70줄에 접어들었다. 어언 50년을 소리만을 탐구하며 살아온 김벌래 씨.
정작 그가 가장 좋아하는 소리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비오는 날 함석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요. 난 그 소리가 제일 좋더라고~”

김벌래 씨는...
1941년 경기도 광주 출생. 본명 김평수. 체신고등학교 통신학과 졸업.
동아방송 성우 1기로 지원했다가 뜻밖에 음향전문가의 길로 들어섰다.
펩시콜라, 트라이 등 빅히트 광고를 비롯해 2만여 건의 효과음을 창조해 냈다.
1990 ~ 서울예술대학 광고창작과 강사, 1997 ~ 얼싸38AUDIO 고문, 1998 ~ 홍익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독특한 외모로 어린왕자, 내일은 야구왕 등 영화에도 출연했다. 로봇태권V 등 5편의 영화에서 특수효과를 담당했다.
저서로 불광불급, 이런소리 들어봤습니까? 동해물과 백두산이, 한국소리 100년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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