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동 수원예총 회장·시인

정치는 논리가 아니다. 정서다. 요즘 화두는 장소를 가리질 않고 정치이야기다. 농촌도 예외는 아니다. 여·야 정당이 4·11총선에 나설 후보자 공천에 매몰되어 있다. 저마다 객관적 공천기준을 만들어 몇 차례에 걸쳐 공천자가 확정되고 있다.
올해 말에 대통령 선거도 있고 해서 정치의 계절은 연이어 이어질 듯하다. 도덕과 자질능력을 가장 뛰어나게 보여주는 정치인에게 국민은 상품으로 권력을 줄 것이다. 신문지면 어디고 정치기사다. 다른 중요한 쟁점들은 모두 ‘정치’라는 화두에 매몰되는 듯하다. 아니, 오히려 정치의 수단화되는 경향마저 드러낸다. 한미FTA협정이 발효가 되었는데도 뾰족한 대안 없이 그저 정치적 발언만 쏟아낼 뿐이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만 해도 그렇다. 제대로 된 공약은 없이 읊조리기만 할 것인가.
법조인, 연예인, 작가들이 너도나도 와글와글이지만 농업계를 대변하는 인물은 어디서고 찾아볼 수 없다. 아예 농업인은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다. 정치의 계절은 ‘국민이 주인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시간’이다.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던 정치인들이 마음에도 없는 ‘국민의 공복’으로 돌변해 주민을 찾기 시작하기에 그렇다. ‘주인 된 도리’를 제대로 해야 하겠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비례대표 선정과정에서 정당들이 농업인을 얼마나 관심 갖고 고민할지를 지켜봐야겠다. 자유무역협정 발효로 가장 피해가 극심한 분야가 농업이 아닌가. 우리 농업·농촌을 보호하고 농업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도록 최소한의 정치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 여성공천비율 15%를 내걸고 여성후보자를 찾느라 여·야 정당은 분주하다. 하지만 여성법조인, 여성운동의 스타를 찾는 관행은 여전하다. 물론 전문직에 진출해 자리를 잡은 소수의 여성도 좋다. 하지만 농촌에서 농업을 영위하며 살아가는 그야말로 ‘똑’ 소리가 나는 농촌여성지도자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공천심사위원이나 정치권이 서운하다. 아니 화가 치민다. 총선공천과정에서마저 정치권이 농업인을 홀대하고 있다는 서운함 때문이다.
그간 우리정치는 후진과 퇴행을 반복하며 진흙 구덩이에 처박혀 공회전 중이었다. 감기약·소화제·파스 등 가정상비약을 약국이 아닌 슈퍼 등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게 하자는 ‘약사법 개정안’이 결국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불발로 끝난 것도 그 하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3%가 찬성한 일인데도 말이다. 특히 약국이 드문 농촌지역에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제도개선이 아닌가. 국회는 일부의 소리(小利)보다는 다수의 대의(大義)를 위한 대의(代議)기관이 아닌가.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는 정치인을 위한 정치로 수렴된 꼴이다. 정치인의 큰 덕목은 민의존중이다. 국민의 의사와 이익, 편의를 외면하거나 반하는 것은 정치인 스스로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다.
정치를 하려면 역사가 요구하는 방향과 함께 하는 통찰력, 그걸 선거라는 과정을 거쳐 현실정치 속에서 구현해낼 수 있는 능력이다. 연(緣), 조직, 금전동원, 인지도가 중시되던 한국정치 현실의 구도가 흔들리는 듯하다. 소위 ‘간판’이 없는 신인들이 대거 등장했기에 그렇다. 자신의 정체성이 옳고 바르면 된다. 건강한 정치적 자아를 가진 이들이 정치권에 보다 다양하게 입문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중앙당’이라는 울타리가 있는 정치 구조 속에서는 일단 그 안에 발을 딛는 순간 자신이 살아온 가치 모두를 부정하고 파괴하도록 만드는 풍토가 안타깝다. 그가 살아온 삶의 무게와 진정성이 결코 가볍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정치판에서 오래 묵은 정치인일수록 혼탁함이 과한 탓인지 다선의원들이 공천에서 낙마했다.
앞으로 총선에 임하는 여·야공천자들은 FTA 최대 피해자인 농업계를 위한 정책개발에도 권력 감시자로서의 ‘진정성’을 보여줄 때 농업인은 여기에서 감동을 느낄 것이다. 정치권은 농업인의 일상적 아픔에 그리 적실(的實)한 응답을 주지 못했다. 그것만큼은 명징하다. 정치의 계절이 정치황혼의 계절이 되지 않길 바란다. 농민은 똑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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