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50~60년대 ‘국민학교’로 불리던 시절에 초등학교에 다닌 이들이라면 ‘가정방문’이란 말을 다 기억할 것이다. 각 학년 담임선생님이 학기초에 자신의 담임반 아이들이 사는 마을을 돌며 아이들 집을 찾아가 부모를 만나고 사는 형편을 살펴보는 일종의 순시(巡視) 같은 거였다. 선생님 일행이 마을 동구 밖에 떴다 하면, 형편이나 집 모양새가 어지간한 아이들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렇지 못하고 궁색하기 짝이 없는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탓도 아닌데 가난에 대한 부끄러움과 수치, 세상에 대한 막연한 원망의 도가니에 빠져 주눅들게 했던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
부모는 부모대로 설탕물 한 그릇 변변히 대접할 형편도 못되니 그아니 죽을 맛이었겠는가. 이런 판국에 어머니께서는 한 꾀를 냈다. 돼지고기 한 근을 사려면 실한 오릿길을 줄달음질쳐 푸줏간엘 다녀와야 하는 판이니 매양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고, 너른 뒤꼍 한 구석에 철망을 둘러치고 닭을 기르기로 한 것이다. 비록 쇠고기 돼지고기는 아니어도 어떤 손님이 오든 뒤꼍의 닭 서너마리 목 비틀어 뚝딱쓱싹 백숙이며 도리탕을 해올리면 되니 이런 성찬(盛饌)이 또 어딨겠는가 말이다.
그날로 어머니는 10리 장에 나가 중간 크기의 중병아리 너댓마리를 사 이고 오셨다. 이놈들을 잘 키워 새끼 몇배를 까내면 순식간에 20~30마리로 불리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놈들의 만만찮은 먹이였다. 벼농사를 엔간히 짓던 터였으니 방아찧을때 나오는 쌀겨나 음식물 찌꺼기를 주긴 했지만, 투실하게 살을 찌우려면 다른 단백질 먹이가 필요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낸 것이 개구리였다.
난 시간이 날 때마다 논두렁이며 개울가를 헤집고 다니며 닥치는대로 참개구리를 철썩철썩 두드려 잡아들였다. 그러다가 시장기가 돌면 크기가 큰 개구리 몇마리를 골라 뒷다리를 뽑아 껍질을 벗기고는 철사에 줄줄이 꿰어 논둑고랑에 걸고 짚불에 구워 먹었다. 누릇누릇 알맞게 익은 개구리 뒷다리살의 그 고소함이라니…. 그렇게 잡아들인 개구리는 통째로 큼지막한 깡통에 넣고 물을 부어 푹 끓인 다음 건져내 칼로 곱게 다지고, 그것을 싱싱한 풀이나 배춧잎, 쌀겨와 끓일 때 우러난 육수로 버무려 주니 닭에겐 최고의 보양식이 되었던 셈이다.
요즘 영국에서 뛰고 있는 ‘맨유의 캡틴’ 박지성이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가 보양식으로 개구리즙을 먹였대서 수근수근 화제다. 지난주 5일이 경칩이었는데, 놀라깬 개구리들이 그 소리 듣고 다시 땅속으로 다 기어들어가지나 않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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