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아~참아야 한다기에/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1960년대에 공전의 히트를 하며 이땅의 여인네들의 심금을 울렸던 이미자의 노래 <여자의 일생> 1절 가사다. 애절한 가수 특유의 창법도 창법이려니와 숙명적인 한으로 점철된 전통사회 한국 여인의 인고(忍苦)의 삶이 고스란히 극명하게 그려진 노랫말이 듣는 이들의 가슴을 쳤다. 그건 노래가 아니라 곧 자신들의 인생사(人生史) 그대로 였다.
전통 봉건주의사회에서 이땅의 여인들에게 주어진 운명은 필연과도 같이 파란(波瀾)과 질곡(桎梏)으로 옭아매어져 있었다. 오죽해서랴 줄줄이 딸을 낳으면 아들을 못낳는다 하여 남편의 외도와 첩질이 너그럽게(?) 용서되고, 딸을 낳으면 시어머니의 갖은 박대와 멸시 속에서 죽으라고 핏덩이를 뒤집어 엎었다. 아들에게는 옥돌을 가지고 놀게 하고 계집아이에게는 기왓장을 가지고 놀게 하라고 일렀던 것도 저때의 보육가르침 이었다.
그중에서도 당시 여성의 생애주기(生涯週期)를 가장 간명(簡明)하게 보여주는 것이 ‘삼종지도(三從之道)’란 법도다. 즉, 어려서는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를 따르고, 출가헤서는 남편을 따르며, 늙어서는 자식을 좇으라는 말이다. 그 법도에 여성으로서의 자신은 없고, 오로지 집안의 들보이자 중심인 남성(아버지-남편-아들)을 따르라는 것이다. 무엇 한 가지 제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도 없었던 시절이었으니, 광열쇠를 틀어쥐는 일은 시부모와 남편이 죽기 전에는 그야말로 언감생심(焉敢生心)이 아닐 수 없었다.
세월무상인가. 최근 금융감독원이 ‘한국형 생애주기별 금융교육 가이드라인’이라는 지표를 내놔 관심을 끈다. 사람의 생애주기를 미혼기→신혼기→자녀 출산 및 양육기→자녀 학령기→자녀 성년기→자녀 독립 및 은퇴기의 순서로 나누어 각 생애주기별로 소요되는 평균수입·지출액을 조사해 내놓은 자료다. 말하자면 각각의 주기별로 얼마를 벌며, 얼마를 쓰고 저축하는지를 객관적으로 측정한 결과다. 이에 따르면 수입과 지출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는 자녀 성년기로 413만원 수입에 276만원 지출, 58만원 저축을 했고, 은퇴기에는 자녀 성년기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165만원 수입에 121만원 지출, 18만원 저축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그 모든 생애주기의 중심에 여전히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요 어머니인 ‘여성’은 없다는 것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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