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서양에는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마을공동체 공간, 전통사회의 가부장적 서열의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주거공간이 사랑방이다. 특히 과거 양반사회에서 사랑방은 서열상 대가족의 최상위에서 절대 지존의 위치에 있는 가장(家長)의 독립생활공간이자 응접실이요 서재였다. 사랑채 장지문 창호(窓戶) 밖으로 새어나오는 주인장(主人丈)의 밭은 헛기침 소리와 탕탕탕-재털이에 부딪히는 장죽(長竹) 소리만으로도 날이 선 찬기운이 횡하니 처마끝에서 맴돌았다.
그런 준엄한 지존의 공간도 집안의 대를 이을 손자인 사손(嗣孫)에게 만큼은 거칠 것이 없는 만만한 놀이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구들장의 뜨거운 열기에 눌은 콩댐 장판의 누릿한 내음과 담뱃진에 절은 쿰쿰한 ‘할배’ 냄새, 그리고 푸석한 옛 서책의 곰팡내와 매콤한 묵향(墨香) 등등에도 질리지 않고 어린 손자는 늙은 할배의 무릎마디에 도사리고 앉아 수염발을 잡아채기 일쑤였다.
그러던 사랑방도 전통사회 대가족제도의 분열, 주거양식의 변화와 함께 그 모습을 달리하게 된다. 한 절대가장의 독립공간은 시나브로 그 빛을 잃어가고, 대신 마을 고로(古老)들의 여유로운 이야기방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라디오와 TV가 보급되기 전의 사랑방은 그야말로 정보공유가 가능했던 커뮤니케이션의 장(場) 구실을 톡톡히 했다.
죽은 손자의 식은 손이라도 빌려야 할 만큼 바쁜 농사철에도 하루 일이 끝나면 늦저녁 대충 마치고는 뽀드득 하니 고무신 닦아 신고 사랑방 마실에 나선다. 그렇게 사랑방에 둘러앉아서는 등잔불 심지를 돋워가며 농사얘기며 대처(大處)에 나가 있는 자식들 얘기로 고단한 하루의 피로를 씻는다. 할머니는 할머니들대로 또다른 집의 안방에 모여앉아 자식얘기며 며느리 얘기로 팍팍한 시골살이의 숨통을 튼다. 때론 이 사랑방이 투전판이 돼 시골 아낙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우리 농촌살이의 애환이 젖어 흐르던 사랑방도, 동네마실도 TV보급과 함께 추억처럼 세상의 저편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별의 별 시상얘기 그 안에 다 있고 티브이 연속극이 월매나 재밋는디…”
이런 판에 서울시가 아파트를 지을 때는 공동 텃밭이나 마을 사랑방·북카페 등의 커뮤니티 시설 설치를 의무화 시킬 것이라고 한다. ‘사람 중심의 지속 가능한 서울’을 표방하고 있는 시장의 철학을 반영한 것이라니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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