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醬) 담그는 시인 박 찬 중

‘우리콩 참된장’ 브랜드로 표준화… 체험농장 건립부지 마련

‘눈이 내리네~♬ 당신이 가버린 지금 ♪♬~
눈이 내리네~♪♬ 외로워지는 이 마음 ♬♪’
부아앙~ 부근부근한 색소폰 소리가 산자락에 울려 퍼지자
나뭇가지에서 볕바라기를 하고 있던 이름 모를 산새들이
푸드득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눈이 시리도록 투명한 겨울 산빛이 쩌엉~하고
한낮 산골의 정적을 깨며 털고 일어나 얼음계곡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것 만으로도 시인은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산중 ‘성물(聖物)’처럼 익어가는 된장
박찬중 시인이 고단한 서울생활을 접고 이곳 보령의 오서산(烏棲山) 자락 명대계곡 입구에 터를 잡고 장(醬)을 빚으며 인생 제2막의 서막을 연 건 6년여 전, 처가동네 언저리라고는 하나 낯설고 물 설은 생면(生面)의 땅이었지만, 산은 솔숲을 내주어 천년 학을 기르듯 시인에게 오롯이 너른 품을 내주었다.
보령시 청라면 장현리 52번지. 시인은 몇 백 평되는 이곳을 수행정진의 도량[道場] 삼아 돌쩌귀 하나, 나무 한 그루 소홀함이 없이 온기로 다듬어 생기를 불어넣으며 하나 둘씩 옹기 장독을 너른 마당에 앉혔다. 해미와 덕산을 양겨드랑이에 끼고 남쪽으로 흘러내려와 광천·청양 사이에 우뚝하니 오서산을 부려놓은 가야산 줄기에서는 따사로운 햇살이며 선선하고도 청량한 바람을 은혜롭게 가득가득 내려주어 장들은 성물(聖物)처럼 익어간다.
물론 담근 후에야 자연이 그렇게 다스려 가지만, 맛 나는 실한 콩을 들이고 알맞게 삶아내 메주를 띄우고 장독에 앉히기까지는 명인·명장 뺨치는 시인의 아내 최사라 여사의 몸에 배인 손맛이 천혜의 비전(秘傳)처럼 자리 잡고 있음이 ‘참맛’을 빚어 올리는 가장 큰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그 옆에서 천하의 미식가(美食家)임을 자임하는 산그림자 같은 시인은 시심(詩心)을 익힌다.

‘콩을 까다보면, 골고루 잘 여문 콩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경우도 허다합니다. 같은 종(種)임에도 대여섯 알이 실한 놈도 있고, 두세 알이 고작인 녀석도 있지요. 또 더러는 지나치게 크게 자란 한두 알에 눌려 콩 구실도 못한 채 자라다 만 녀석을 볼라치면, 우리네 세상살이를 보는 듯 하여 가슴이 짠합니다’
-시인의 신작 산문시<산중엽신(山中葉信)34>

시인의 길, 시인의 꿈
충남 금산에서 인삼농사를 크게 짓던 부농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의 유년시절은 별 어려움이 없었던 탓에 그만큼의 호사도 나름으로 누렸다고 했다. 당시 시인의 선친은 잔치 때면 나라 안에서 호가 나있다는 소리꾼을 불러 노래를 청해 들을 정도였으니 그 가세가 어떠했는지는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그가 시작(詩作)에 뜻을 두고, 1981년 저 유명한 청록파 시인의 한 사람인 박두진(朴斗鎭)선생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지를 통해 문단에 데뷔, 시인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그러한 가정환경에서 길러진 감성 유전자가 자양분이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지금의 산골살이를 하기 전, 박찬중 시인은 서울 장안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는 잘 나가는 출판기획자였다. 초기 출판사 배영사와 샘터 잡지사 등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하며 시를 써왔던 그의 인문학적 기획력이 빛을 발휘한 건 대원사라는 출판사의 편집주간으로 재직할 때였다. 그때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기념비적인 저작물이 ‘빛깔있는 책들’ 시리즈다. 우리나라의 각종 전통문물과 양식들 한 주제를 한권에 에센스하게 담아 컬러판 핸디북으로 꾸며 펴낸 이 책들은 당시 커다란 주목을 받으며 우리 전통분야 출판물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틈틈이 달군 시심을 정리해 <억새><어머니> 등의 시집과 자신이 살아오면서 만났던 세상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 <그래도 삶은 아름답습니다>를 펴냈다.
시인의 꿈은 여기서 다가 아니다. 그는 자신들이 공들여 빚어오고 있는 장을 ‘우리콩 참된장’이라는 브랜드로 이미 표준화시켰지만 이를 더 확장해 체험농장으로 키우고, 생활사박물관과 북카페 건립을 위해 이미 대천언저리에 몇 천평의 야산을 매입해 놓은 상태다. 혹시나 해서 중장비 운전면허도 얼마 전 따놓았다고 했다. 일을 놓아야 할 나이에 점점 머리와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 아니냐고 걱정을 더해 묻자 박시인이 넉넉한 표정으로 털털 웃으며 말했다.
“나 혼자만 누리자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더불어 나누며 가자는 거지요. 참, 이곳에 들어와 장 만들며 쓴 산문시가 60편 쯤 되는데 날 풀리면 시집으로 묶어낼 겁니다…”
역시 그는 천생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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