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글 마구 쓰는 디지털시대의 펜과 종이의 유쾌한 반란’… 며칠 전 한 일간지에 실렸던 기사의 제목이다. E여대 교양교육원이 재학생들의 책 읽기와 글쓰기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지정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제1회 독서대회’를 가졌는데, 반드시 종이에 펜으로 작성해서 제출하게 했다는 것. 학교측은 “손으로 글을 쓰면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다. 옛날 과거시험처럼 생각만으로 직접 글을 쓰는 경험을 시켜주고 싶었다”고 행사 마련의 뜻을 밝혔다. 컴퓨터 자판 두드리기에 길들여져 있는 요즘 학생들에게는 펜과 종이를 이용한 아날로그식 글쓰기가 한참 낯설겠지만, 그래서 그러한 발상이 오히려 신선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불문학을 전공한다는 한 4학년 학생은 “독서대회라는 이름에서 사라진 낭만이 느껴져 참가하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사회의 빠른 성장과 변화 속에서 컴퓨터라는 문명의 이기(利器)가 보급되면서 붓과 펜, 그리고 연필 등의 문방구(文房具)가 시름시름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이 먼 옛날처럼만 느껴지지만 고작해서 4,50여년 전후의 일이다. 50~70년대에 초·중·고등학교를 다닌 이들에게는 몽당연필과 펜과 잉크, 그리고 크레용에 얽힌 추억 하나씩은 다 있을 것이다. ‘국민학교’로 불렸던 당시 초등학교의 연중행사였던 가을운동회와 교내백일장, 사생대회, 소풍 등 각종 행사의 시상품은 거개가 공책(노트)묶음이나 연필 한 다스, 12색 크레용 등의 문구류였다.
형형 색색의 연필들이 키 순서대로 가지런히 담겨있는 부잣집 아이들의 미끈 얄팍한 생철 연필통은, 뭉툭한 몽당연필 한 두개를 호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게 고작이었던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빠이롯드 만년필’이 받고 싶은 최고의 졸업선물이었음에랴.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작가들에게도 연필과 관련된 일화들이 있다. 40세 불혹의 나이에 늦깎이로 문단에 데뷔한 고(故)박완서 선생은 습작시절 남편이 출근하고 난 뒤 아이를 등에 업고 짬짬이 메모처럼 몽당연필로 꼭꼭 눌러가며 원고를 썼었노라고 회고한 적이 있다. 한때 중광스님, 천상병 시인과 함께 문단의 3대 기인으로 불렸던 소설가 이외수 씨의 초기 작업습관은 차라리 고행에 가까웠다. 원고지를 방바닥에 펼쳐놓은 다음 무릎 꿇고 엎드린 자세로 연필로 소설을 썼다. 소설가 박범신·김훈씨 역시 싸인펜과 연필로 글쓰기를 하고 있는 글쟁이들이다. 정신적 사유(思惟)의 깊이를 더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그래서 누군가 그랬다. - “읽기를, 쓰기를 멈추면 정신이 허물어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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