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동
수원예총 회장·시인

어김없이 굳은 결심들이 떠오르는 새해도 두 주가 지났습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 네 글자가 꼬리처럼 뒤따르지만 굳은 몸을 움직이며 마음에 신선한 ‘시작’을 불어 넣어야 하겠습니다. 시작이란 낱말에는 무한한 희망이 담겨 있기에 그렇습니다. 지금 바라보고 있는 새 달력은 새로운 시작의 메시지, 희망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해 줍니다. 
땅에는 거름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거친 땅이 기름진 땅으로 바뀝니다. 누군가 시골 땅을 지키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누군가 농민을 키우고 농업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농촌에 홀로 남아 외롭더라도 땅에 거름을 주며 사람을 키우는 지도자가 있어야 희망이 있습니다. 그 희망지킴이가 바로 농촌여성지도자들입니다.
농촌여성조직은 리더가 가진 꿈과 그릇의 크기만큼 자랍니다. 큰 그릇은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습니다. 나와 동질(同質)인 것, 나를 편안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것, 그래서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도 끌어안을 수 있을 때 조직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농촌여성단체가 그러해야 합니다.
임진년은 기대보다는 불안감을 더 불러일으키는 해가 되리라는 예고입니다. 지뢰밭 같은 세계경제의 위기가 언제 어디서 폭발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혜안과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지난해보다 나은 올 해를 위해서는 어떤 준비들이 필요한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공자는 ‘먼 앞일을 깊이 헤아리지 못하면 가까이에 근심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도 바쁜데 무슨 말이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맞고 있는 발등의 불은 어제 앞일을 깊이 헤아리지 못해서 발생한 오늘의 결과일 뿐입니다.
정부나 정치권이 제아무리 좋은 말을 쏟아내도 한미FTA와 앞으로 전개될 한중FTA는 농업·농민·농촌을 어렵게 할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입니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목적지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던 농업을 살리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야 하며 농민들에게 힘을 북돋아주고, 그들한테서 힘을 얻어야 합니다. 목적지에 다다르려면 아주 오래 걸릴 지도 모릅니다. 길을 아는 사람들은 결코 지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농촌여성지도자의 몫이자 에너지원입니다.
진심으로 몸을 던져 일하는 농촌여성지도자들의 모임이 우리 마을, 우리 농촌지역을 바꿀 수 있습니다. 변화를 이루려는 의지가 굳건하기만 하다면 모임의 규모가 작아도 크게 문제가 안 됩니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면 혼자가 아니란 걸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바로 내 옆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자유무역의 물꼬가 터졌더라도 농촌의 정서, 농촌의 존엄성, 농촌의 자긍심이 망가져서는 안 됩니다. 농촌문화는 정적(靜的)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동적(動的)인 것입니다. 문화는 계속 변해야 하고 그 과정은 늘 다른 문화와의 상호작용에서 일어납니다. 농촌에 다문화가족이 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모든 문화에는 과거에서 전승되고 대물림되어온 특별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세상의 다른 이들과 만나서 교류하면서 내 자리를 찾으려면 정체성의 감정이 필요합니다. 정체성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서는 곤란합니다. 오히려 문화적 다양성을 받아들임으로써 정체성이 더 튼튼해져야 합니다.
많은 농촌여성들이 기꺼이 참여할 수 있는 공동의 이상과 꿈을 설정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고, 규칙적이고 꾸준하게 거기에 땀과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농사를 짓고 농산물을 거둬들이는 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어떤 문화활동에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얘기입니다. 농촌여성지도자는 두 가지 힘이 필요합니다. ‘행하는 힘’과 ‘전달하는 힘’입니다. 예측할 수 없는 변화에 맞춰 위기대응능력도 높여가면서, 농촌여성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임진년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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