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태초 이래 인류가 발명한 것 중 최고·최대의 발견·발명은 단연 불(火)의 발명이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울울창창한 원시림이 강풍에 쓸리며 서로 부대끼다가 자연발화로 산불이 나는 괴상쩍은 자연현상은 당시 원시인들에게는 천지개벽과도 같은 놀라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산불은 강기슭이나 산비탈에 움막을 지어 정착생활을 하며 타제·마제석기 등의 도구를 만들고, 수렵과 어로작업으로 날짐승과 들짐승, 물고기를 잡아 생식(生食)을 하던 원시인들의 식생활 방식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하늘귀신과도 같은 무서운 산불이 휩쓸고 간 뒤 여기저기 불에 타 나자빠져 있는 짐승들의 기막힌 익은 고기 맛을 움막안으로 끌어들이게 되었던 것. 그로해서 생식에서 오는 각종 기생충 감염으로부터 해방돼 수명이 연장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난방이라는 주거생활의 안락함을 가져다 주고, 날 것을 저작하기에 편리하게 턱뼈가 유난히 컸던 원시인의 얼굴 모양도 점차 작아져 현생인류에 가깝게 진화되기에 이르렀다.
그 뒤에는 수정(水晶)의 원석이랄 수 있는 석영(石英)을 부싯돌 삼아 서로 부딪치게 해 그때 튕겨나오는 불똥을 말린 쑥잎이나 수리취잎 등의 부싯깃에 박히게 해서 불을 피워올렸다.
우리나라에 성냥이 등장한 것은 1880년대. 그 이전까지는 나무와 나무를 격하게 마찰시켜 불씨를 만들거나 부싯돌 세트를 넣은 부시쌈지를 집집마다 마련해 걸어두거나 휴대용으로 주머니에 가지고 다녔다. 그만큼 불씨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병조에 딸린 관청으로 왕실과 궁궐을 지키는 일을 하던 내병조(內兵曹)에서 계절이 바뀌는 입춘·입하·입추·입동날에 새 불씨를 만들어 한성부에 내려주었고, 한성부에서는 그 불씨를 각 관리집에 나누어 주고 꺼뜨리는 일이 없도록 단속했다. 이를 개화(改火) 또는 반화(頒火)라고 했다. 불씨를 잘 지키는 일은 곧 집안의 재물과 복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는 불씨를 지키지 못하는 며느리는 게으르고 칠칠치 못하다 하여 소박을 맞고 친정으로 쫓겨나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아궁이 옆에 따로 불씨를 재속에 보관하는 ‘화티’를 만들어 두었고, 불씨가 있는 부엌을 관장하는 조왕신을 모시는 좀도리단지를 모셔놓고 지극정성을 다했다.
용띠해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작년보다 나라살림이 더욱 어려워질 거라는 전망이 신문방송을 타고 어지럽게 흘러다닌다. 이런 때 마음속에서만이라도 따뜻한 희망의 불씨 한소끔 피워올려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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