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장사익

 

하루하루가 모여 일생이 됩니다.
즐겁고 슬픈 얘기들 엮어 노래를 부릅니다.
세상이 참 아름답고 살맛납니다! (장사익)

장사익은 소리꾼이자 태평소의 명인이다.
 그의 소리는 투박함과 정치(精緻)함이 함께 묻어난다. 40대 중반에 시작한 ‘노래하는 사람’의 길.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이 길을 왜 이리 돌고 돌아, 흐르고 흘러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가. 그 먼 우회의 여정이, 그 세월의 무게가 단단하게 다져놓은 그의 소리는 가장 한국적인 목소리로 꿈을 노래한다는 평을 들으며 우리의 가슴에 찡한 울림을 주고 있다.

어릴때부터 노래와 함께
어릴 적부터 노래 부르길 좋아했죠. 고향 농악대에서 장구를 치시던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얼마나 신명나고 멋들어지게 가락을 뽑아내셨던지... 지금 내 노래에 담긴 신명과 가락도 거기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웅변을 시작해 중학교 졸업 때까지 목청을 가다듬는다고 동네 뒷산에 올라 발성연습을 하곤 했습니다. 선린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고향인 충남 홍성 광천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죠.
노래를 곧잘 한다고 소문이나 소풍이나 장기자랑에서 노래요청이 쇄도했어요.
친하게 지내던 빡빡머리 반 친구들과 ‘더 빡빡스’라는 보컬그룹을 만들어 신나게 노래도 했습니다.

카센터에서 문득…그리고 태평소
고등학교 졸업 후 일찌감치 사회생활을 시작했죠. 그런 와중에도 서울 낙원동 음악학원을 다니며 노래의 기본을 익혔습니다. 군에서도 문화선전대에서 노래를 했기 때문에 음악은 가늘게 나마 저와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대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가정 형편도 어려운데...저는 직장인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그만 무역회사였는데 오일쇼크로 금방 문을 닫았고 이후 저는 15번이나 직장을 전전, 음악과의 끈이 완전히 단절되고 맙니다.
1992년이었어요. 당시 카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문득 “아 나는 과연 최선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자고 결심했죠. 태평소를 잡았습니다.
농악대와 사물놀이판에서 태평소를 불고 또 불었습니다.
1993년 전주대사습놀이 ‘공주농악’에서 태평소로 장원을 수상했고, 이듬해 전주대사습놀이 ‘금산농악’에서도 장원을 수상했습니다.
이즈음 고(故) 김대환 선생의 권유로 노래를 다시 시작하게 됐죠. 김 선생은 “산토끼를 박자 생각하지 말고 불러봐”라고 했지요. 나는 내 맘대로 부른다고 제 멋대로 불러댔지만 김 선생은 “아직도 속으로는 박자를 생각하고 있잖아. 그것마저 버려야 돼”라며 호통했죠. 자유롭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장사익 노래는 그때부터 시작된 거죠.
1994년 11월, ‘장사익 소리판'이란 공연으로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됐습니다.
피아노의 명인 임창동 씨에게 등을 떠밀려 소극장에서 시작한 이 공연이 나의 공식 데뷔였던 셈인데요. 공연을 마친 다음날 아침 “아, 행복하구나”라는 말이 툭 튀어나오더군요.

찔레꽃
사람들은 제 대표곡으로 ‘찔레꽃’을 꼽더라고요. 1993년으로 기억해요.
그윽한 꽃 내음에 눈을 돌려 돌아보니 소박한 하얀 찔레꽃이 피어있더라고요.
장미처럼 화려한 꽃도 아닌데....돋보이지도 않고 수줍은 듯이 피어있는 단정한 찔레꽃이 이런 아름다운 향기를 내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그때가 정말 힘들 때였는데....나는 그만 찔레꽃과 동화돼 버렸죠.
내가 찔레꽃이 된 겁니다.
그래 내 삶도 저렇게 화려하지 않고 잘 눈에 띄지 않아도 순박하게 살지고 생각했어요.
나의 노래도 그런 향기를 뿜어내자...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노래로 쌓아가는 나의 인생
1949년생이니 벌써 환갑을 넘은 나이입니다. 남들은 데뷔 20주년이니 25주년이니 할 46세가 되던 해(1994년) 1집 「하늘가는 길」로 정식 데뷔했으니 어지간히 늦은거죠.
하지만 지금은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이후 2집 「기침」(1999년), 3집「허허바다」(2000년), 4집「꿈꾸는 세상」(2003년),  5집 「사람이 그리워서」(2006년), 6집 「꽃구경」(2008년) 그리고 라이브 앨범 「장사익」(2009년) 등을 잇달아 발매했죠.
나는 90대가 돼서도 노래하는 꿈을 꿉니다. 인생을 접기 직전의 노인네가, 기력도 없어 허리도 제대로 못 펴는 노인네가 노래를 붙잡고 생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멋있지 않아요?
노래로 살아가는 인생, 행복합니다.
장사익이 ‘봄날은 간다’를 부른다.
한을 토하고 기를 발산하는 듯한 그의 목소리는 우리의 가슴을 쟁쟁하게 울리며 뭔가 아련한 슬픔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그의 노래는 애이불비(哀而不悲)다. 슬픔 속에 솟구치는 희망과 여명이 그 속에 있다.
올해 일본, 미국 등 해외공연을 비롯해 수많은 국내공연 일정을 소화해 낸 장사익은 조금 은 지쳐있는 듯하다.
오는 12월 27일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장사익 소리판 공연 ‘역(驛)’으로 올해 공연의 대단원을 마치는 그는 내년에 더욱 왕성한 활동과 풍성한 공연을 하기위해 영과 육을 다잡고 있다. 그의 말대로 90대까지 노래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장사익 소리’를 듣는 행복한 시간을 30년을 더 연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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