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정말 그녀를 사랑했고 사랑에 충실하려 했지만 결국 직장을 잃고 아내에게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 채 가정이 파탄날 뻔 했다. 하지만 지금도 그녀와 함께 한 시간이 그립고 무엇 보다도 한번뿐인 내 운명이었다고 확신한다.” 
필자는 우연히 어느 중년 신사의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우직하고 보수적이지만 속정이 깊고 의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삼십대 중반 사회생활이 한창일 때 운명처럼 그녀를 만나 애타는 열애 끝에 밀월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곳에서 그야말로 잠깐의 산책만 빼고 거의 24시간을 먹고 자고 사랑을 나누었다고 했다.
그러나 꿈같은 열정의 시간들이 지나고 무료한 현실로 돌아오자, 일탈이 주는 달콤함에 취해 직장에 사표를 내고 아내에게 미안하다, 죽을 죄를 지었다는 말을 남기고 가출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현실감을 잃은 그에게서 그녀는 떠나고 없는 것이다.
사랑(love)이란 누구에게나 가슴 설레는 말이다. 성의학에서는 정열(passion), 친밀감(intimacy), 이성(commitment)이 조화를 이룰 때 완전한 사랑으로 본다. 그러므로 남성들은 때로 강조하는 사랑은 운명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어느 날 정오,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한 남성에게 유난히 후각에 예민한 배란기의 그녀가 여성 페르몬이라 알려진 질 내 분비물의 산화물인 코플린(couplin) 농도가 높은 채로 우연히 반경 10m 안에서 당신과 만났을 가능성이 크다.
첫눈에 서로에게 이유 없이 끌린 두 남녀는 강력한 페르몬의 작용으로 서로의 외모상의 단점을 보지 못한다. 서로의 마음이 완전히 열리고 극도로 편안한 상태(이를테면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시간의 제약도 없는 낭만적인 여행에서)가 되면, 몰입하는 섹스에서 쉽게 최고의 오르가즘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운명이라 믿은 사랑이 강렬한 페르몬과 오르가즘 체험의 절묘한 환경을 만들어낸, 그 누구와도 대체될 수 있는 우연이라면 어찌 하겠는가.

강경숙 (산부인과전문의·성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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