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가을이 겨울로 흘러간다. 산빛은 스산한 바람을 안고 서걱이며 검붉게 녹아 흐른다. 만추(晩秋)의 투실한 허리께를 넘어서서 입동(入冬, 11월8일), 소설(小雪, 11월23일)에 들면 무지개도 숨어 보이지 않게 된다고 했다. 이때가 되면 물도 얼기 시작하고 땅 위에 서릿발도 서기 시작한다.
한 해 내내 땀흘려 가꿔 거둔 햇곡식을 신께 올려 감사제를 지내기에 가장 좋은 달이라 하여 상달(上~), 혹은 시월상달이라 하였지만 이때부터는 겨울채비를 서둘러야 한다.
‘시월은 초겨울이니 입동 소설 절기로다/나뭇잎 떨어지고 고니소리 높이 난다/듣거라 아이들아 농사일 끝났구나/남의 일 생각하여 집안 일 먼저 하세/무 배추 캐어들여 김장을 하오리라/앞냇물에 깨끗이 씻어 소금간 맞게 하소/고추 마늘 생강 파에 조기 김치 장아찌라/(…)/양지에 움막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장다리 무 아람 한 말 수월찮게 간수하소/방고래 청소하고 바람벽 매흙 바르기/창호도 발라놓고 쥐구멍도 막으리라/수숫대로 울타리 치고 외양간에 거적치고/깍짓동 묶어 세우고 땔나무 쌓아두소/우리집 부녀들아 겨울옷 지었느냐/술 빚고 떡하여라 강신(降神) 날 가까왔다/꿀 꺾어 단자하고 메밀 찧어 국수 하소/소 잡고 돼지 잡으니 음식이 널렸구나.’
<농가월령가>의 ‘시월령(十月令)’이다. 물론 더말할 것도 없이 음력 시월이다. 옛적 시골살이에서의 겨울채비가 눈으로 보듯 그려져 있다. 지금이야 도시건 촌이건 간에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마당이니 옛적 시골풍경을 그려보기조차 어렵게 됐지만 그 적에는 그렇게 바리바리 절기를 챙겼다.
그중에서도 특히 서양의 추수감사제처럼 강신날을 챙겼다. 이날은 일년 열두달 중 상달인 음력 시월의 오일(午日)이나 무오일(戊午日)에 무당을 불러서 성주받이에게 햇곡식이나 햇과일을 차려놓고 굿을 하고 집안의 평안을 빌었던 속절(俗節) 이었다.
예전 어렸을 적, 적잖은 논농사를 지어 가을 타작이 끝나면 어머니는 ‘가을떡’이라 하여 감사의 시루떡을 몇 말 해서 치성을 드린 다음 동네 안 집안네와 이웃에 두 세쪽씩 돌렸다. 휘영청한 달빛 그림자를 밟아가며 콧잔등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도록 씨근거리며 동네 안을 내달려 떡을 돌리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그런 애틋했던 시절도 속절없이 흘러가고 상달의 시간은 또 그렇게 흘러간다.
미국의 교육철학자이자 성직자인 헨리 반 다이크는 이렇게 설파했다. -“시간이란 기다리는 사람들에겐 너무 느리고, 걱정하는 사람들에겐 너무 빠르고, 슬퍼하는 사람들에겐 너무 길고, 기뻐하는 사람들에겐 너무 짧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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