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가나안농군학교장 김범일

54년 한국전쟁 직후 개교…지도자양성 선도
국내외 60여만명 교육…15개국에 학교 설립

가나안농군학교는 50~53년까지 남북한 민족간 치열한 전쟁으로 국토가 초토화 된 다음해인 54년 일가(一家) 김용기 선생이 구농구국(救農救國)의 이념으로 개교되었다.
개교당시 국민 중 90%가 농민이었고 식량이 자급되지 않아 많은 사람이 배를 곯았다. 이에 김용기 선생은 황무지를 개간 농사체험을 통한 기술터득과 개척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학교를 열었다.
그후 가나안농군학교는 60여 성상 국내외에서 60여만명의 교육생을 배출, 세계인이 주목 선망하는 교육기관으로 성장해 오고 있다.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용암리 산자락 ‘제2가나안농군학교’에서 농장관리와 교육을 주도중인 김범일(6세) 교장을 만나 가나안개척정신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

가나안농군학교의 김범일 교장은 선친(先親)이신 일가(一家) 김용기 선생께서 1931년 농업을 통한 나라사랑의 이념을 담은 ‘조국이여 안심하라’라는 이름의 책 저술을 시작으로 해 농민계도운동을 펼치면서 학교를 만들게 되었노라고 풀이했다.
“학교를 처음 세운 것은 54년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의 황무지를 구입, 교육생과 함께 농사체험을 통한 기술습득과 개척정신함양, 민족주체성확립, 민주적지도자양성 등 여러 목표를 가지고 학교가 개교되었습니다.”
김 교장은 그후 일가선생께서 용인군 원삼면과 하남시에서 땅 평당5원을 주고 황무지를 사들여 6년간 옥토를 가꿔냈다고 했다. 새벽4시 영혼의 잠을 깨워 애국가 4절까지 부르며 황무지와 가난과의 처절하고 치열한 전쟁을 통해 옥토를 장만하며 교육을 했다.
그리고 72년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용암리의 평당 30원의 황무지를 사들여 개간, 농장을 일구면서 제2가나안농군학교를 개교, 40여만명의 교육생을 배출해 내고 있다.
이어서 그는 선친 김용기 선생의 생전 잊지 못할 일화를 들려주었다.
“저는 11살 철부지때 아버님과 함게 삼각산 농장에서 힘든 농사를 지었습니다. 힘든 농사로 아버님에 대한 원망을 많이 품었어요. 그러나 아버님께서 농업을 귀히 여기며 농업을 통한 사회의 공적 가치구현을 위해 애쓰시는 모습에 차차 감동되면서 운명처럼 아버님의 일을 지금껏 이어오고 있지요.”
“1966년 아버님은 아시아의 노벨상이라는 ‘맥사이사이상’ 사회공익부문 수상자로 결정되어 제가 아버님을 모시고 필리핀을 갔었어요. 이때 아버님께선 모시바지와 두루마기와 흰고무신을 준비시켰어요. 아시아의 권위있는 지도자급 인사가 참석하는 자리라 가족들은 양복과 구두를 준비하자고 했지만 ‘있는 그대로 간다’며 고집을 꺽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출발전까지만 해도 고구마를 캐시던 거친 손과 검게 그을리신 얼굴과 작은 체구의 아버지가 부끄러워 어쩔줄 몰랐습니다.”
수상소감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아버님께서는 “내가 흰고무신을 신은 것은 내가 한국인이고, 농부이기 때문이다. 고무신을 신은 것은 우리나라와 아시아인이 고무신을 신지않는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까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통역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내의 모든 사람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습니다. 모두가 눈물을 흘렸고 저도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김 교장은 아버지의 이념을 받들어 70년대 새마을운동의 전신이 되었던 ‘가나안개척정신’을 세계에 널리 펼치고자 열정을 바치고 있다.
김 교장은 지구촌 곳곳의 절대빈곤을 추방하기 위해 가나안농군운동세게본부를 조직, 총재로서 적극 활동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필리핀,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의 해외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했고 인도, 팔레스타인 등 11개국에 설립을 추진중이다.
김 교장은 가나안농군학교를 다녀간 교육생은 초등학생부터 70대 노인과 세계각국 사회지도층을 포함 60여만명에 이르는 수많은 사람이 거쳐갔다며 이들이 자신과 가족, 마을, 나라를 변화시켜가는 주체가 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교육에 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최근 이화여대부속초등학교 6학년 학생을 교육시켰는데 설문의 답변에서 ‘태어나 가장 감명받은 교육으로 나라사랑의 좋은 얘기 많이 들었다’고 써놓은 것을 보고 보람을 느꼈다고 자랑했다.
끝으로 김 교장으로부터 이시대 우리 국민이 갖추어야 할 국가관과 국민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국민각자 자신의 존재목적과 의미, 이유를 잘 새겨야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는 자신뿐만이 아니라 남에게도 행복과 삶의 보람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김 교장은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자존감(自尊感)과 자신감, 당당함 그리고 넉넉한 마음으로 남에게 정을 베풀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살 것이냐’라는 뚜렷한 목적의식과 인생관을 정립해야 삶의 목표를 얻게 되며 꿈을 갖게 된다며 목적의식과 인생관 정립에 힘써야 된다고 말했다. 목적의식과 인생관이 정립이 되면 삶의 목표가 서게 되며 꿈이 생긴다고 했다.
삶의 목표와 가치는 물질, 학벌, 명예, 권력에 지향하기 보다는 삶의 진정한 사명과 가치정립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삶의 진정한 목표와 꿈이 서면 비전이 생기고 비전이 생기면 확신이 선다고 했다. 확신을 얻으면 용기와 결단을 얻게된다고 했다.
꿈과 비전, 확신이 선 뒤에는 마치 사과 유목(幼木)을 심어 3~10년 뒤 풍성한 결실을 거둔다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꿈을 펼쳐 나가기를 당부했다.
꿈이 있는 사람은 기쁨을 거두고 행복을 얻는다고 했다.
김 교장은 꿈이 있는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며 거듭 꿈을 지닌 삶을 살아갈 것을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자신만을 돌보는 자아실현에 그치지 말고 남을 섬기고 도우며 나눔을 베푸는 사람으로 가정, 마을, 사회, 국가를 위한 공익적 가치실현에 힘써줄 것을 거듭 강조했다. 특히 젊은이들 부모사랑 경노효친에 힘써줄 것을 역설했다.
김 교장은 인력자원개발 즉 사람농사가 최고의 사업이라며 사회와 나라발전을 이끌 진정한 일꾼을 키우는 교육사업에 자부와 보람이 크다며 계속 겸허한 자세로 교육을 이끌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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