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조선조에서 살아서 왕위를 물려주고 뒤로 나앉은 왕은 모두 네명이다. 개국군주인 태조 이성계와 그 다음 왕인 정종과 태종 이방원, 그리고 단종이다. 이들을 일러 상왕(上王), 혹은 태상왕(太上王)이라 했다.
이들중 왕의 자리에서 물러난 뒤 궁궐이 아닌 밖의 사저(私邸)에서 지낸 상왕은 이태조와 단종 뿐이다. 그러나 단종의 경우는 숙부인 세조에 의해 강제 축출돼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에 유배되었던 터이니 예외적인 상황이랄 수 있다.
상왕이 되면 후대의 왕권이 어느 정도 안정되기까지는 대개 뒤에서 정사에 관여하는 섭정(攝政)을 하게 마련인데, 이태조의 경우는 사뭇 달랐다. 그는 자신의 아들인 방원이 세자 방석 등 형제들을 무참히 살육하는 ‘왕자의 난’끝에 왕위에 오르자 고향땅 함흥으로 가 연흥의 사저에 머무르며 죽을 때까지 아들 태종과 앙앙불락(怏怏不樂)하며 지냈다.
아들이 수차례 사신을 보내 한양으로 돌아올 것을 간곡히 청했으나 번번히 이를 묵살하고 모시러 갔던 사신마저 되돌려 보내지 않았다. 일설에는 오는 족족 다 죽였다고 하나 확인된 건 한 건뿐이고, 이때 세간에서는 ‘가서는 깜깜 무소식’이거나 ‘가고 오지 않는 사람’을 이르는 ‘함흥차사(咸興差使)’란 말이 생겨났다. 나중에 이태조가 사부(師父)로 받드는 무학대사가 찾아가 마지못해 돌아오긴 했지만….
그제나 지금이나 사저는 왜 그다지도 탈도 많고 말도 많은지 모르겠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귀하디 귀하고 명예로운 자리에 올랐다가 물러나는 마당에 왜 세상과는 꽁꽁 담을 쌓은 철옹성같은 사저에서 지내야 하는 것일까. ‘신변안전’이 가장 큰 이유라는데, 속된 말로 재임 중에 얼마나 척(隻)진 일·사람이 많길래 백주 대낮에 쉽게 대문 밖 출입을 못하는 것인가 말이다. 오죽했으면 최근 논란이 됐던 이명박 대통령의 퇴임후 사저 이전을 두고 ‘갈라파고스대(臺)’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의 단초가 된 갈라파고스 군도에 견주어 바깥 세계와는 통하지 않아 전혀 다른 진화과정을 보이는 갈라파고스 제도처럼 청와대도 자신들만의 ‘닫힌 세상’에 갇혀 있다는 뜻의 말이다.
정말 우리 백성들은 언제나 마을회관, 아니면 노인정, 혹은 시골장터에서 동네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전(前) 대통령 할아버지’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인가….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