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북어쾌(북어20마리를 한 단위로 셀때 쓰는 말) 젓조기로 추석명절 쇠어보세/새 술 오려송편(일찍 여물어 수확한 쌀로 빚은 송편) 박나물 토란국을/성묘를 하고 나서 이웃끼리 나눠먹세/며느리 말미 받아 친정집 다녀갈 때/개 잡아 삶아내고 떡상자와 술병이라/초록장옷 검남빛치마 차려입고 다시보니/여름동안 지친 얼굴 회복이 되었느냐/가을 하늘 밝은 달에 마음놓고 놀고 오소.’
<농가월령가> ‘8월령’ 세번째 장 구절의 일부이다. 저 때의 시절모습이 고스란히 소박하게 그려져 있다. 추석은 설·단오와 함께 우리민족 최대명절의 하나였다. 맑은 하늘 밝은 달 아래 온갖 만물이 투실투실하게 여물고 살이 오르는 가을 한창 때라서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 일렀다. 이때 만큼은 있는 집이나 없는 집이나 마음만큼은 둥두렷이 떠오른 휘영청한 보름달 만큼이나 넉넉해 졌다.
추석명절이 가까워 지면 집 안팍이 부산부산해 지면서 활기로 집 처마가 들썩였다. 한 이레 전부터 엿기름 우려 식혜를 달이고 산자에 바를 엿을 고는 들큰한 냄새와 차례상에 올릴 갖가지 전을 부치는 고소한 기름냄새가 마을 안에 가득차 명절에의 기대로 달떠있는 동네 조무래기들의 코를 한 주 내내 벌름거리게 했다. 그런가 하면 동구 앞 야산에서 촉촉히 물오른 소나무의 윤기있는 속잎을 소쿠리에 하나가득 솎아 따다가 시루바닥에 깔고 녹두가루며 참깨, 검정방콩으로 속을 저며넣고 빚어 쪄낸 햇송편, 봄날의 나른함 속에서 이산 저산 울어대던 뻐꾹새 울음이 묻어날 것만 같은 노란 송홧가루를 꿀로 반죽해 찍어낸 다식(茶食)은 더할 수 없는 입호사를 시켜주었던 축복같은 이때만의 별식이었다.
특히 이때에는 차진 햅쌀로 술을 빚어 용수를 박아놓고는 그 안에 맑게 괴어오른 청주를 떠 차례상에 올렸다. 그저 이 모든 것이 오로지 ‘조상님의 크신 음덕(蔭德)이려니~’하며 감사하는 마음들 뿐이었다. 흡사 해질녘 제 둥지를 찾아드는 새들처럼 하나 둘씩 찾아들 새끼들을 이제나 저제나 목을 빼고 기다리며 고향집의 늙으신 아버지, 어머니는 짓무른 눈을 부벼뜨고는 쉬 잠들지 못한다.
그러나 그렇게 정겹기만 했던 명절 풍경들도 이제 옛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전화 한 방이면 차례상 음식세트가 택배로 배달되고, 고향의 부모님껜 용돈 몇십만원을 온라인 계좌로 송금시킨다. 그리고 정작 명절연휴엔 일가족이 룰루랄라 여행을 떠난다. 이렇듯 세상이 온통 물신(物神)에 잡혀 헛것을 좇고 있는 것만 같아 가슴이 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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