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제1라디오 ‘3분고전’ 강사 박재희 교수

 

양현재 장학연수생으로 발탁, 한학연수 몰입
한학은 장기간 공부하지 않으면 영글지 못해
명심보감 머리맡에 두고 통독, 좋은 삶 찾아야

매일 아침 KBS-제1라디오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들려오는 박재희 교수의 ‘3분고전’은 청취자 모두가 ‘통찰’을 느끼는 값진 메시지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박재희 교수의 메시지는 기업인을 비롯, 전국민 사이에 때아닌 인문고전 열풍을 불어넣고 있다. 이런 열풍을 점화(点火)시킨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의 박재희(朴在熙)원장을 만나 시대의 화두인 동양고전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박원장은 충북 괴산태생으로 어려서 글을 읽기보다는 조부의 고고한 인품의 향기를 맡으며 진지한 삶을 사시는 모습을 보면서 어렴풋이 인생공부를 익혔다고 했다.
여덟 살부터 천자문을 시작으로 4자소학, 인성교과인 동몽선습을 시작으로 한학의 길 초입(初入)에 들어섰다.
그런 조부의 한학지도에 힘입어 자연스레 83년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에 입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후 국역연수원 3년과정을 졸업한 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에서 도가철학을 연구했다.
“저는 조부님으로부터 한학을 재미있게 배운 탓으로 시대가 탐하는 사법·기술고시와 의사 등 전문직을 엿보지 않고 스스럼없이 동양철학을 공부하기로 했지요. 전도가 무망한 공부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부모님의 적극적인 동의가 있어 쉽게 결심했어요.”
그는 남들이 안가는 길을 간다, 다르게 사는 공부가 오히려 호사, 사치하다는 생각으로 공부에만 전념, 마음이 편했고 행복했었다고 했다.
대학입학때 성균관의 유생(儒生)이 되었다는 감격과 긍지를 느끼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는 과에서 2인만을 선발하는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양현재 장학연수생으로 발탁돼 기숙하며 한학연수에 전념하게 되었다. 우연찮게 다산 정약용선생의 학번 1번에 이어 박원장은 양현재의 200번의 학번을 받은 것에 사명을 느끼며 공부에 더욱 분발했다고 한다.
그는 이 시대 마지막의 고매한 유림한학자인 오호영·신호열·나기주 등의 은사를 모신 것은 인생의 값진 행운이었다고 밝혔다. 이제는 그런 높은 식견을 가진 고매한 한학자는 다시 보진 못할 것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그들 은사분들은 문사철(文史哲)을 머리에 거의 완벽하게 저장, 마치 걸어다니는 고전 컴퓨터였었다고 했다. 무한대 용량의 고전지식을 지닌 하드디스크와 같은 분들이셨다고 했다.
은사님들은 생각의 범위가 무척 넓고 다양하며 진보와 보수 어느 한쪽에 매이지 않고 폭넓은 식견으로 모든 것을 아우르고 포용하는 한국의 마지막 종합인문학자였다고 했다. 그리고  많은 것을 배워 확 트인 분들이었다고도 했다.
고루한 예의에 집착, 고수하지 않고 재미있고 위트가 넘치는 농담과 해학, 유머로 대화를 하며 술도 멋지게 드신 분들이었다고 했다. 가까이서 이런 분들의 삶을 지켜봤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밝혔다.
박원장은 이분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었던 것이 큰 인생수업이 되었다고 했다.
박원장은 따라서 이 시대의 선비는 다양한 식견을 가지고 고집과 아집에 얽매이지 않고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장에게서 한학공부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한학은 단기전이 아닌 장기전으로 끝이 날 때까지 푹빠져 공부해야 하는 학문입니다. 마치 된장독에 빠진 듯이 묵고 나와야 합니다. 한학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려면 단기 승부를 생각말고 10~20년 바라보고 해야 합니다. 단기적으로 하면 크지 않고 영글지를 못합니다. 꾸준히 읽다가 보면 어느 순간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 나온 듯 길이 탁 트이는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
그는 이어서 동양고전은 케케 묵고 현실과 안맞거나 구미에 맞지 않는다고 인식해 온 것이 현실이었는데 이제는 국민 각계인사들이 고전에 큰 관심을 두어 다행이라고 했다. 그 이유를 그는 이렇게 풀이했다.
첫째는 사회가 혼란해 모두가 원론 또는 각론의 세상진리로 돌아가 보자는 의식이 싹텄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두번째는 아시아·중국이 뜨면서 아시아적 가치에도 함께 눈이 뜨여 그윽한 향취와 묘미를 지닌 동양고전에 가랑잎에 불붙듯 뜨거운 열풍을 지핀 것이라고 했다. 결론적으로 세계의 지식인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여기서 그가 출연중인 방송 4년차에 접어든 KBS-제1라디오 ‘3분고전’프로로 화제를 돌렸다.
“이 프로는 아침·점심·저녁 세차례 방송됩니다. 전국에 많은 청취자가 있어요. 울릉도와 독도에도 있습니다. 밭을 가는 할아버지와 길 가던 장관도 듣습니다. 인생살이에 도움이 되는 좋은 얘기라서 반성의 기회를 갖게 된다며 공감을 보내오시는 분들이 많지요.”
그들은 편지와 이메일로 청취소감을 많이 보낸온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박원장의 서실인 상우재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그 이틀전 극단 신협의 70세 노배우인 최대웅씨 부부가 찾아와 박원장의 방송강연에 감사를 보내며 많은 대화를 나누고 갔다고 했다.
박원장은 최씨 부부에게 이순신 장군이 얘기했던 장부론을 풀이해 들려 주었다고 했다.
‘내가 세상에 쓰여지면 죽음을 각오하고 일을 하겠다. 나에게 운명이 있어 기회가 닿아 세상에 나가면 더욱 열심히 일을 하겠다. 기회가 닿지 않으면 나 나름의 길을 찾겠다. 아부하거나 권력과 결탁치 않겠다. 결탁하며 사는 것은 수치스럽다. 계급이 낮아도 백의종군하는 것에 개의치 않겠다.’
그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 청취와 한촌에서 주민과 모닥불을 피우며 담소를 나누는 것 중 어떤 것이 좋고 나쁜지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이 누릴 문화의 혜택과 철학의 범위내에서 행복을 찾는 자득형(自得型) 인간으로 사는 게 행복이라는 것.
다산 정약용 선생은 유배지에서 자득형 인간으로 돌아가 잃어버린 차문화(茶文化)를 찾아 즐기며 생애 중 300권의 저술을 남겼다고 했다.
박원장은 마음을 고치는 처방을 기록한 명심보감을 머리맡에 두고 읽어 좋은 삶을 살아갈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일렀다. 명심보감 한권을 통독하면 ‘자득방법’을 터득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매일 방송을 통해 고전을 빌려 여러 청취자에게 삶의 소명의식을 깨우쳐 주는 것에 무한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수업년한 30년인 상암서원에서 CJ홈쇼핑 허태수 사장, 한국바스프 조진욱 회장, 서울대 송병락 명예교수, 송자 전 연세대총장 등과 함께 고전공부와 담론을 펼치고 있다고 했다.
한편 박원장은 강원 홍천에서 시작된 장락서원 무료강연을 지금은 서울 건국대법학관 10호실에서 매월 4주차 토요일 9~12시까지 실시하고 있다. 이 강좌에 부산·대구 등 전국 각지 남녀노소 200여명이 청강하고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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