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가 서로 통하지 않으니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도 제 뜻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는 자가 많다. 내가 이를 가엽게 여겨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이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데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이 글은 560여 년 전 세종임금이 한글을 만들면서 글자를 만들게 된 동기를 밝힌〈세종어제 훈민정음〉해례본의 서문을 쉽게 풀어 옮겨놓은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코흘리개들은 ‘세종임금이 한글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문제를 놓고 제법 진지하게 티격태격 말싸움을 벌였었다, 가당치도 않은 별의별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우리들 대부분의 고개를 끄덕이게 한 ‘~카더라’ 설은, 세종임금이 화장실에 앉아 용변을 보면서 눈앞에 있는 격자(格子) 무늬 문살을 보고 고안해 냈다는, 제법 그럴싸한 말이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우스개지만 그 후로도 상당히 오랫동안 그 비밀의 열쇠를 푸는데 골몰했던 기억이 새롭다.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신라 때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하던 이두(吏讀), 혹은 향찰(鄕札)이 있었다. 원효대사의 아들인 설총이 창안했다고는 하나 확실치 않다.
한글이 만들어진 뒤에도 소위 사대부들은 여전히 중국의 한자를 썼고, 일반 하층민과 아녀자들이 쓰는 말과 글은 언문(諺文)이라고 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말이 가장 많이 수록돼 있는 것은 한글대사전, 우리말 큰 사전 등의 대사전류로 대략 40여 만 개의 낱말이 실려 있다. 그런데 웃지 못 할 일은 그 중 70%가 한자어라는 데 있다. 무늬만 한글인 셈이다.
‘국한문 혼용 교육’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최근 국립국어원이 그 동안 표준어로 인정되지 않던 단어 39개를 표준어로 인정해 <표준국어 대사전>에 올렸다.
자장면→짜장면, 복사뼈→복숭아뼈, 날개→나래, 냄새→내음, 뜰→뜨락, 손자→손주, 두루뭉술→두리뭉실 등이다.
표준말은 서울의 중류층에서 쓰는 말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지역에 따라 말의 맛과 빛깔이 다른 토박이말들이 아직도 지천이다.
사투리라 하여 비하 하대할 일이 아니란 말이다. 왜 꼭 표준어만을 고집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그렇다면 한자나 한자어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조선조 선조 때 이수광이 지은〈지봉유설〉 해학조에 한자로 기록된 것을 우리 글로 옮겨 비교해 보자.
기골이 장대한 사람이 키 작은 사람을 비웃는 내용인데, 그 얼마나 이해가 쉽고 우리 글의 참 맛을 느끼게 하는가. 더 갈고 닦아갈 일이다.
‘着笠難看足 穿靴已沒頭 / 路逢牛跡水 欲渡芥爲舟’
(갓을 쓰니 발이 보이지 않고, 신을 신으면 머리까지 들어가고 마는구나 / 길을 가다 소 발자국에 고인 물만 보아도, 겨자씨 껍질로 배를 삼아 건너려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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