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자 21세기여성정치연합 부회장

오 경 자
21세기여성정치연합 부회장 

 

선풍기도 환상이라 한 것이 기껏해야 한 세기도 못되는 바로 코앞의 옛일이건만 이제는 누구나 에어컨이 없는 여름을 상상하기 힘들어 한다. 전기를 아끼자, 하면 아암 그래야지~하며 고개는 쉽게 주억거리며 동의 하지만 실천은 쉽지가 않다. 에어컨 켜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선풍기로 대신하면 얼마만큼이 절약되고 선풍기 스위치를 누르고 싶은 마음을 잠깐 접고 부채를 들면 얼마만큼이 절약되어 우리의 공기를 얼마만큼 깨끗하게 할 수 있다고 여성단체가 앞장 서서 목소리를 높여도 수은주가 사정없이 올라가면 거의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이 먼저 일을 저질러 버리는 것이 요즘 우리들의 생활이 아닌가 싶다.
아무려나 이런 혹서가 있기에 우리는 가을에 황금들판에 서서 흐뭇한 미소를 머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도시인들의 경우 말이다. 이제 곧 찾아올 더위를 피하려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빠져나가 바다로 산으로 짐을 꾸리기에 바쁠 것이다. 이런 여름휴가철에 좀 생산적인 계획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마음이 가닿는 곳으로
이왕 도시를 벗어나는 것이 피서 여행의 제1목적이라면 멀리 갈 것 없이 가까운 농촌을 찾아 생활 속의 전원생활 속으로 들어가 보는 재미는 어떨까?
도시인들의 피서 목적은 사실 일상에서의 철저한 탈피이다. 그런데 일반 휴가지에 가서는 그 목적은 전혀 거둘 수가 없다. 지역만 시골로 옮겨놓았을 뿐 그곳에는 이미 도시의 땟국이 더 많이 묻혀져 있다. 아니 일부러 도시 공해를 많이 옮겨다 놓았다. 편리함에 익숙한 도시인들을 사로잡으려면 그들의 편의를 먼저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피서지라는 곳들에는 상인들의 영업성이 이미 또 하나의 도시를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고향이 아니라도 좋다. 마음이 가닿는 곳을 골라서 아이들 손을 잡고 농촌 깊숙한 곳에 찾아들어 하룻밤 유숙을 청해보자. 미리 알아보고 연락을 하고 가야 하겠지만 도시와 농촌들이 지역적으로나 직장단위로 자매결연을 꽤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조직을 이용해서 도시인들이 겸손히 농촌에 방해꾼을 받아 달라는 연애편지를 쓰는 여름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 여름밤의 소박한 꿈
농촌도 농촌대로 농민을 이해해 달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런 기회를 만들어서 도시인들에게 시원한 잠자리를 내주고 더위에 손님을 맞는 불편을 조금 쯤 감내 하면서 진정한 이웃을 늘려서 고충을 깊이 이해하는 동지를 만들어나가면 나쁠 것은 없을 것 같다. 도시인들은 농민을 돕는다든가 무슨 큰 선심이라도 쓰는 기분이 아니라 진정으로 우리 식탁을 책임져 주는 분들의 수고를 잠깐 동안 이나마 가까이에서 직접 보고 느낌으로써 그 성실한 땀의 소중함과 경건한 농심을 피부로 느끼면서 무엇인가를 깨닫고 얻는 기쁨을 맛보면 얼마나 좋은 일일까?
귀농이나 귀촌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일시적 기분으로 할 것이 아니라 이런 기회에 가족들 모두와 함께 농촌의 겉이 아니라 속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적성이 맞는가? 아니 자신의 변화가 가능할 것인가? 또 자신의 귀농이 자타 모두에게 유익이 될 수 있을까. 혹여라도 해악을 끼치지는 않을 자신이 있는가? 여러 가지를 꼼꼼히 짚어보고 확인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싶다.
한 세대 전에만 해도 10명 중 8명 이상이 농촌에서 나고 자랐기에 그 정서 밑바닥에는 농민의 생활이 배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로 10명중 여덟은 도시에서 나고 자랐기에 생태적으로 도시적이다. 그런 관계로 농촌을 이해하는 일에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아버지는 체질적으로 농촌에 금세 동화될 수 있는 요소를 지니고 있을 지라도 아이들이 전혀 그러지 못한 상태에서 아버지의 꿈만을 가지고 온가족의 행복을 담보하는 것은 어쩌면 무모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올여름은 도농이 함께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는 한 여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을 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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