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섭섭하지 않게/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손목에 달아놓고/아주 춥지는 않게/가죽가방에 넣어 전세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중략) …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구두도 양말도 벗기우고/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톡톡 튕기는 씨들을/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중략) … //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화장(化粧)도 해탈도 없이/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바람과 놀게 해다오’
1982년 황동규(黃東奎) 시인의 죽음을 노래한 연작시 <풍장(風葬)>의 첫번째 시이다. 풍장이라는 독특한 장례풍습절차를 자신의 죽음을 가정해 서사적 이미지로 그리고 있다. 자신의 주검이 바람 속에서 풍화되어 다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시인의 낙관적이고도 초월적인 죽음관이 담담하게 묘사돼 있다.
풍장은 사체(死體)를 땅에 매장하지 않고 옷을 입힌 채, 또는 관에 넣어 공기 중에 놓아두는 장례방식으로 사체를 놓아두는 방식에 따라 나뭇가지에 얹어놓는 수장(樹葬), 단을 쌓아 그 위에 시신을 놓아두는 대장(臺葬), 벼랑에 매달아 두는 애장(崖葬), 동굴 속에 놓아두는 동혈장(洞穴葬) 등으로 나뉜다. 이 풍장은 주로 아시아 고지대 종족과 인도네시아 섬 주민, 아메리카 인디언, 일본 오키나아 섬,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전북 고군산열도에서 행해졌다. 공기 중에 방치하듯 버려 둔 사체가 썩어 살이 완전히 빠져나가면 뼈만 골라 잘 씻어서 항아리에 담아 따로 모셔놓고 제사를 지낸다.
그냥 버리듯 숲속과 동굴, 절벽에 시체를 두니 어디 바람 만으로 풍화되듯 살이 썩어 뼈에서 빠져나가겠는가. 때론 주린 갈까마귀떼의 밥이 되기도 하고 독수리, 승냥이의 허기를 채워주는 요기거리가 되기도 한다. 몸을 통째로 내어주니 불가에서는 이를 육보시(肉布施)라고도 했다. 전라도 진도에서는 시신을 임시로 돌을 깐 땅 위에 놓고 짚으로 엮은 이엉으로 덮어 두었다가 2~3년 뒤 썩고 남은 뼈를 씻어 다시 땅에 묻는 초분(草墳)이라는 장례풍습도 있었다.
요즘 독일의 노인들 사이에서는 비용이 저렴하고 절차가 간편하다는 이유로 국경을 넘어 이웃나라 네덜란드 화장시설을 돌아보는 ‘화장(火葬)여행’이 유행이라니… 이래저래 저승길은 멀고도 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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