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덕배 KRA농어촌희망재단 이사장

박 덕 배
KRA농어촌희망재단 이사장

 

여성농사꾼의 유쾌한 성공이야기를 맛깔나게 담은 책을 본 적이 있다.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농어업 주체로 등장하면서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성공하는 모습들을 소개한 책이다. 더욱이 농어촌은 가부장적인 구조가 오랜 동안 질서화되고 내면화된 곳이기에 여성이 농어업 현장에서 성공한 주체로 등장했다는 사실자체로도 감동이 된다.
직원들이 하는 얘기를 귀담아 들어보면, 농어촌 가부장적인 구조와 질서가 우리 안에도 뿌리 깊게 내면화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로, 부모님이 농사를 짓는 자녀에게 장학금을 주는데, 아버지가 상업에 종사하고, 어머니가 농사를 짓는다고 했을 때 보통 내면적인 질서는 그러면 부모님은 농사가 아닌 상업에 종사한다고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반대 상황일 경우 부모님은 농사를 짓는다고 판단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농어업인의 자녀를 판단하기 위해 여러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쉬운 것은 여성 농어업인 주체의 등장이 남성 가부장적 질서에 편입되어 평가되고 있다는 데 있다.
여성 농어업인의 성공이야기를 보면서 내가 경악했던 부분은 거기에 있었다. 여성 농어업인의 성공이야기를 다루면서 정작 여성이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만들어 놓았던 공동육아, 가사노동 등에 대한 고유한 가치들은 재평가 및 재해석되지 못했다. 근대 산업사회 이후 임노동에 근거한 성공사례들이 주를 이루었던 여성 농어업인의 성공이야기는 사실 그 점에서 아쉬웠다. 그런 맥락에서 여성 농어업인과 관련된 아쉬움을 조금 보완하고 싶다. 물론 남성인 내가 여성에 대해 얘기할 때 나타나는 내면적 가부장적 질서가 무의식적으로 드러날 수도 있기에 조금은 조심스레 얘기해 보고자 한다.         
먼저, 한국 농어업은 그동안 여성이 농어촌의 주체로서 감당하고 있는 몫들에 대해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았다. 육아 및 자녀교육, 그리고 가사노동 등에 있어 여성은 늘 그림자처럼 숨죽여 묵묵히 그 몫을 부당하게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여성은 위대하게도 호혜평등의 가치가 담긴 품앗이라는 제도를 통해 농어업 공동체 경제를 농어촌 사회에 구현하고 있었다.
지금은 농어촌 마을 공동체가 경제공동체의 단위로 인식되는 시기에 있다. 농어촌 지역 특이성을 고려한 사회적 기업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남성 가부장적인 임노동에 근거한 경제생산 방식이 아닌 대안적인 경제공동체로서 농어촌 마을 공동체가 요청되고 있으며,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주체가 여성이 되는 것은 어찌보면 시대적 흐름이 되고 있다.
가부장적 남성이 만들어 놓은 사회적 질서와 경제제도 등이 많은 사람들을 사회에서 배제시키거나 구조적으로 낙오자를 양산하게 하는 경쟁체제였다면, 여성이 주체가 된 대안 공동체는 배제가 아닌 협력, 낙오가 아닌 상호존중의 새로운 가치질서를 만들고 있다는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정작 대안 공동체의 주체인 여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아직 미미하다. 한 예로 여성농업인센터 육성사업이 그 사례가 될 것이다. 과거 정부는 2008년까지 여성농어업인센터 설립을 전국적으로 163개소로 계획했다. 그러나 운영사업이 지자체로 이양되고부터는 2011년 현재 38개소에 그치고 있어 수치적으로는 설립계획이 미진하고 정체된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부족한 지원과 사회적 관심영역의 외부에 있기에 한편으로는 너무 아쉽다. 다행인 것은, 농식품부의 협력으로 우리재단이 시설개선사업의 형태로 미비하나마 여성농어업인을 지지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여성은 그동안 농어촌 사회에 제대로된 주체로서 평가되지 못했다. 여성 주체에 대해 새롭게 평가하여 저술된 책들과 이야기들의 구조도 사실 내면화된 남성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금 사회는 남성 가부장적 질서가 서서히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 사회는 대안으로서 협력과 상호존중의 여성적(또는 모적) 가치로 이루어진 사회를 소망하고 있다. 그 이야기의 주체는 이제 남성이 아닌 여성이어야 하며, 그 시작을 잘못 짝지워진 언어규정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 그것이 제도와 양식의 방향과 함께 동시적으로 일어날 때 우리는 새로운 문명의 전환을 이룰 것이란 기대가 든다. 위대한 여성들이여,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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