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올인’의 실제 주인공 ‘카지노왕’ 차민수

 

‘카지노=도박’ 아닌 엄연한 서비스산업

지난 2003년, 노승일이란 작가의 소설 ‘올인(All in)’을 각색한 이병헌·지성·송혜교 주연의 TV드라마 ‘올인’은 온 나라 안 시청자들을 안방극장에 ‘올인’하게 하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성공과 사랑에 올인하는 프로갬블러(Gambler)의 격정적인 인생역정을 그린 이 드라마의 실제주인공이 차민수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는 하루아침에 카메라플래시를 받으며 화려하게(?)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도 ‘돌아온 탕아(蕩兒)’처럼 어느 만큼은 지쳐있을 것도 같고, 또 어느 만큼은 거칠어 보일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아예 빤질빤질한 모양새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세상사람들의 선입견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씨~익 웃을 때마다 하얗게 드러나는 가지런한 이, 잔잔한 웃음기를 머금은 여유 있는 얼굴표정은 ‘온누리의 평화’ 그 자체였다. 이따금 그의 눈빛에서 날이 선 카리스마가 번뜩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가진 자의 여유’라고 얘기하기도 했지만, 그에게서 억지와 인위적인 꾸밈새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1950년생 범띠니까 올해 우리식 나이로 62세지만, 그의 얼굴이며 잘 다져진 몸매를 봐서는 실제 나이를 가늠키 어려울 정도로 젊어보였다. 그 비결은 아마도 철저한 자기관리와 마음 다스림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애초 기독교신앙을 가졌었다는 그가 “나이 들면서 불교가 따뜻하고 좋아지더라”하는 말에서도 그런 분위기는 어렵지 않게 읽혀졌다.
워낙에 ‘바쁘디 바쁜 명사’라서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터에 가까운 후배의 주선으로 편집마감 하루 전 서울 청담동의 한 작은 음식점에서 그야말로 ‘번개팅’이 이루어졌다.

<드라마 올인의 한 장면.>

#강한 아들로 키우려한 어머니의 ‘작심’
1980~90년대에 미국에서 한해에 400만 달러를 벌어들여 포커게임 수입 1위를 차지했던 프로갬블러, 조훈현과 100여 차례 대국을 하면서 ‘절친사이’로 지내는 프로바둑 4단의 기사, 세종대 관광대학원에서 포커와 카지노 이론을 가르치는 객원교수, 카지노 컨설팅을 해주는 ‘카지노 인터내셔널그룹’이라는 회사의 회장, 한국기원의 바둑리그팀인 ‘한게임’의 감독 등 세상에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그의 면모 외에 개인사적인 궁금증 몇 가지를 물어봤다.
- 미국으로 떠나기 전과 미국생활 내내 불화관계에 있었다던 어머니께서 당시 뇌종양 판정을 받으셨다고 알려졌었는데, 지금 살아계신가요?
“그럼요. 올해 92세인데 누님댁에서 기거하고 계십니다.”
‘국화옆에서’라는 시를 쓴 시인 미당 서정주는 자신을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고 했는데, 오늘날의 그를 뱃심 두둑한 세계적인 승부사로 만든 건 순전히 어머니라고 했다.
“제가 4남매 중에 유복자로 세상에 나온 막내인데, 형제들 중에서 저만 어머니 기질을 물려받은 것 같아요. 한마디로 어머니는 여장부이십니다.”
그는 영등포에서 예식장과 경원극장을 운영하던 사업가 어머니 슬하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청소년기를 보냈다.
일곱 살 때부터 배운 바둑이며, 당수·쿵푸·수영·탁구 등 만능으로 스포츠를 익힌 것, 피아노·기타·바이올린 등 악기를 두루 섭렵하면서 용산중·고와 동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할 때까지 원하는 것 모두를 거의 가질 수 있게 해준 것도 전부 그의 어머니의 막내아들에 대한 ‘하늘같은’ 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했다. 고교 졸업 무렵에는 바이올린으로 음악대학 진학을 하려 했던 것이나 대학 때 보컬그룹을 결성해 세컨드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던 것을 보면, 가히 광기에 가까웠던 그의 재기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 승부근성은 타고 난 것인가요?
“그것도 어머니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천성인 것 같기도 한데… 실제로는 어려서 기원에 다닐 때 기원 할아버지와 했던 사탕내기 바둑에서 길러지지 않았나 싶어요. 기원에 가면 어린애가 바둑 두는 모양이 귀여워 보였던지 할아버지가 내게 사탕을 듬뿍 주고는 그 사탕을 걸고 내기 바둑을 두자고 하셨거든요. 사탕을 빼앗길 때마다 어린 마음에도 얼마나 분하던지…(웃음)”
- 어머니께서 단순한 호강이 아니라 작정하고 강하게 키우려 하셨던 것 아닌가요?
“맞아요. 미국에서 이혼하고 8년 만에 빈손으로 귀국했을 때 ‘모자간의 인연 끊자’시며 문전박대한 것이나 다시 달랑 16달러로 시작한 미국생활 초기에 돌아앉으셨던 것 등등이 다 그런 속내를 가지고 계셨던 거지요. 아마도 ‘저 놈은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설 거다’는 확신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아요.”
그 어머니와는 1997년 프로갬블러의 세계를 떠나 귀국하면서 다시 따뜻한 모자관계가 복원된다.

#카지노 산업 육성 필요해
- 우리 사회에서 카지노에 대한 인식이 다소 부정적인 게 부담스럽지는 않으신가요?
“흔히 도박으로 치부하는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카지노사업은 엄연히 산업이에요. 전체의 10%도 안 되는 우리나라의 서비스산업을 키워야 합니다. 싱가포르나 마카오의 예를 봐도 카지노사업이 서비스산업 측면에서 얼마만큼 큰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는지 모릅니다.”
- 정부에 서비스산업, 특히 카지노사업 육성을 위한 정책제안도 해오고 있으신 걸로 압니다.
“예. 많은 진척이 있어요. 오래지 않아 가시적으로 드러나리라고 봅니다. 내 계획은 5년 정도의 기간에 전국에 200조원의 돈을 들여 50개의 카지노 사업장을 개설하는 게 목표예요. 그것도 외국자본을 들여다가 할거구요.”
- 치열하게 살아오신 인생선배 입장에서 요즘 젊은이들을 어떻게 보십니까?
“너무 화초처럼 자라고 있는 것 같아요. 좀 ‘악바리’ 근성을 가져야 할 것 같은데…. 그래야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지 않겠어요?”
- 일 이외 시간에 꼭 하시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늘 긴장 속에서 마음 졸이며 살았어요. 이젠 나이도 있고… 잠 좀 실컷 잤으면 해요…”
그는 웃으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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