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은 24절기 중 여덟번째 절기로 입하와 망종 사이에 끼어 있다. 이 절후는 말 그대로 모든 생물이 조금씩 풍만해 진다는 것이다. 특히 여름에 들어선다는 입하(立夏)와 소만(양력 5월21일) 절기가 들어 있는 음력 4월은 ‘맹하월(孟夏月)’이라 일렀고, 관행으로 행하던 농사법으로는 봄누에를 털고 목화를 심으며 논을 다시 갈고 퇴비를 주며 모내기 준비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때가 되면 동구밖 신작로길에 아카시꽃이 눈송이처럼 피어 흩날리고 함박꽃이 수줍은 시악시처럼 다소곳이 피어나 울안을 훤하게 밝힌다.
‘비온 끝에 볕이 나니 날씨도 좋구나/떡갈잎 퍼질 때에 뻐꾹새 자주 울고/보리이삭 패어나니 꾀꼬리 소리한다.’ <농가월령가> 4월령의 구절이지만, 옛적 우리 서민들에게는 나른한 뻐꾸기 소리만큼이나 하루 해가 너무 길게만 느껴져 배고픔의 서러움이 더했던 보리고개가 이때 있었다. 세끼니를 잇기 어려웠던 그 시절엔 오죽이나 배가 고팠으면 갓 패어난 보리순을 채 익기도 전에 뽑아다 청맥죽이란 퍼런 죽을 쑤어 먹었다.
조선조 정조 때 청나라 연경을 시찰하고 와 <북학의>라는 실학서를 펴낸 박제가(朴齊家, 1750~1805)는 그 책의 ‘농잠총론’에서 당시 우리 백성들의 어려운 살림살이 형편을 이렇게 그렸다.
‘열집이 사는 마을에서 하루 두끼 먹는 집이 얼마 안된다. 소위 장마에 대비한 준비라는 것도 옥수수 몇자루와 고추 수십개가 거적집 그을음 속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당시 시골백성들의 고단한 삶의 모습을 <흥부전>처럼 리얼하게 그린 게 또 있을까. 끼니 잇기 어려워 몸 품 팔던 흥부 내외의 모습을 이렇게 풀어놓고 있다.
‘흥부아내 품팔기는, 용정(精, 곡식을 찧음)하여 방아찧기, 술집에 가 술 걸르기, 초상난 집 상복짓기, 있는 집 그릇닦기, 굿 하는 집 떡 만들기, 시궁발치 오줌치기, 해빙하면 나물캐기, 온갖가지로 품을 판다. 흥부는 이집저집 무논갈기, 이집저집 이엉엮기, 날 궂은 날 멍석맺기, 술밥 먹고 말짐 싣기, 두푼 받고 똥재치기, 한푼 받고 빗자루 매기, 식전이면 마당쓸기, 이웃집 물 긷기, 전주감영 돈짐지기, 온갖 일 다하여도 굶기를 밥먹듯 하여 살 길이 없는지라…’
그러던 백성들이 제대로 밥먹기 시작한 지 고작 3~40년 인데, 요즘 바람 좋고 꽃 좋은 계절이라고 가는 곳마다 관광버스 행렬에 좁은 길이 터져난다. 이 소만절기에 외적풍요을 누리는 것도 좋지만, 마음을 살찌워 보는 건 어떨까 싶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