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내승무·범패 맥 이어가는 인화(引華) 스님

불교 포교위해 전승(傳承)의 길따라 4반세기
“업장소멸이 나의 영원한 화두”

<법고춤>

 <나비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고깔에 감추오고 /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 … /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우고 /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 … / 이밤사 귀뚜리도 울어새는 삼경(三更)인데 /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조지훈(趙芝薰, 1920-1968)의 시 ‘승무(僧舞)’

스님이 추는 춤 ‘승무’의 모습을 이처럼 아름답게 그릴 수 있을까. 아름답다 못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로 젖어드는 처연함 속에서 ‘번뇌는 별빛’으로 승화되는 성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이 시의 주제가 ‘인간번뇌의 승화(昇華)’다.
그것처럼 육신(肉身)의 업(業)을 승무와 범패, 바라춤으로 풀어내며 구도 전승의 길을 가는 비구니 스님이 있다. 경기도 과천의 한 작은 사찰 문천사에서 수행의 길을 가고 있는 인화(引華·속명 남미애·45) 스님이 그 주인공이다.

#못다핀 꽃 한송이
스님을 만난 건 절이 아닌 서울 흑석동의 중앙대캠퍼스에서 였다. 온통 생기로 가득차 넘치는 봄날 오후의 캠퍼스엔 벚꽃잎이 꽃비처럼 어지럽게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학교부근의 한 작은 찻집에서 마주한 스님의 모습에서 예의 조지훈 시인의 시 ‘승무’를 떠올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나비와 같은 하얀 박사고깔에 보일 듯 말 듯 감추어져 있던 파르라니 깎은 머리와 티 하나 없어보이는 맑은 얼굴과 눈빛… 또랑한 말소리 따라 싯구절처럼 돌아설 듯 날아가고,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허공에 뿌리듯 뻗는 장삼자락의 춤사위로 이어지는 승무의 환영을 대하는 듯 했다.
‘어떤 연유로 이 스님은 속세를 떠나게 되었을까…?’ 춤의 환영 속에서 불쑥 고개를 쳐든 건 이런 궁금증 이었다. 인화스님은 조금치의 망설임도 없이 경 읽듯, 얽힌 실타래를 풀어나가듯 얘기보따리를 풀어놨다.

#출가…그리고 춤의 세계
만나는 것은 우연이고 맺어지는 것은 필연(必然)이라고 했던가. 인화스님이 불교에 귀의해 출가수행자가 된 것은 그야말로 필연같은 것이었다.
사업을 하던 부모님 슬하에서 비교적 유복하게 자란 스님은 여러 형제들 가운데서도 미모나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 장차 촉망되는 무용가가 되리라고 누구나가 믿었고 부러움을 한 몸에 샀다. 출가전 스님이 본격적으로 예능계에 입문하게 된 것은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부터. 이곳에서 고전무용과 발레 등의 현대무용을 고루 익힌뒤 ‘한영숙류’의 경기·충청지방 승무에 매진하게 된다.
그러나 속가에서의 인연은 여기까지 였다. 무용가의 꿈을 채 펴보지도 못한 채 졸업을 앞두고 신열(身熱)에 시달리며 몸져 눕게 되었고, 그런 육신의 고통에서 그의 지친 영혼을 건져올린 게 불교와의 만남이었다.
1985년 서울국악예고 졸업 후 김천의 청암승가대 강원을 수료하고 수덕사에서 출가, 수계를 받고 수행자의 길에 오르게 된다. 그때 출가하는 딸을 보며 자신보다 상실감이 더 컸을 어머니가 껴안았을 고통은 지금도 자신의 가슴에 남아 때때로 번민에 싸이게 하는 속가의 눈물 한방울이라고 했다.
그후 동국대에서 학·석사 졸업을 하고 거제도에서 쌍계사의 말사인 세진암의 주지를 역임했다.
출가 후 그는 고교 졸업과 동시에 잠시 접었던 춤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열어간다. 호남 승무 예능보유자인 이매방 선생을 직접 찾아가 사사하는 한편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 기능보유자인 서울 봉원사의 고 송암스님으로부터는 범패(梵唄)와 바라춤을 사사했다. 영산재에서 연희되는 나비춤과 법고춤도 함께 익혀 독무로 국내외 무대에 선지도 이미 오래다. 지금은 인천지방문화재 영산재 기능보유자로 있는 능화스님(속명·김종영)의 뒤를 잇는 전수자로 지정되어 활발한 공연활동을 펼치면서 중앙대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음악학 이론연구를 하고 있다.
인화스님은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수행이자 “불교를 알리는 포교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스님에게 수행자로서 화두가 무엇이냐고 묻자 단호하면서도 간결하게 한 마디로 답했다. -“업장소멸!” 즉, 몸·입·뜻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인 업보(業報)를 소멸시키는 것이라는 말이다.
인터뷰 끝에 농촌여성신문 애독자들께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가슴에 담을 만한 경구 한 말씀을 부탁하자 다음날 기자의 이메일로 <합장게(合掌偈)>를 보내왔다. 그리고 걸려온 스님의 전화 한통이 긴 여운을 남겼다. “부처님오신날 바쁘시지 않으면 제가 있는 절에 오셔서 점심공양하고 가세요…”

<합장게>
合掌以爲花(합장이위화)
身爲供養具(신위공양구)
誠心眞實相(성심진실상)
讚嘆香煙覆(찬탄향연부)
모두워진 이 손은 한송이 연꽃이요
몸조차 님의 뜻 받드는 공양구일세
정성스런 이 마음 진실한 모습으로
향내음 가득한 부처님 오심을 찬탄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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