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담론 형성만으로도 자살예방 가능하다

<아주대 인문사회의학과 이 영 문 교수>

 

올 봄엔 유난히 속절없이 지는 꽃들이 많다. 언제 피었는지도 몰랐는데 한꺼번에 꽃망울을 터뜨린 목련과 개나리와 분홍 벚꽃들이 후두둑 꽃잎을 날려버렸다. 이 와중에서 온 국민에게 충격을 준 카이스트 영재들과 교수의 연이은 자살사건은 우리 모두를 안타깝게 했다. 개인의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성장만을 목표로 경쟁을 부추켰던 우리 모두가 각성하고 되새겨 볼 사건이었다.
 더구나 쉬쉬하며 감추려고만 드는 자살 미수와 우울증의 사회적 병폐들이 이 봄날 더 삐죽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자살은 한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15년 전부터 계속 주장해 오며 자살의 예방과 관리에 대한 연구를 해오고 있는 이영문 교수를 만났다.


#마음과 현실의 부조화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자살률이 높은 것이 무척 아이러니죠? 아마 대사량은 활동적인데 시작은 같이 하지 못해 좌절이 더 크기 때문이겠죠.”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며 경기도 정신보건사업지원단 총괄책임자인 이영문 (50)교수는 마음과 현실의 부조화를 자살의 원인으로 지적한다.
 사실 한국 사회의 자살현황에 대해선 매우 충격적인 수치들이 나와 있다. 현재 우리나라 자살률이 2009년의 경우, 자살로 인한 사망자수가 연간 15,413명, 10만명 당 자살률이 31명으로 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교통사고가 7,147명으로 교통사고 사망의 2.2배가 자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로 OECD 평균은 인구 10만 명당 11.2명이다. 우리가 OECD 평균보다 3배나 높다.
 특히 꽃피는 5, 6월 사이에 자살률이 상대적으로 높으며, 통계적으로는 봄, 이른 아침, 월요일과 화요일 등에 자살이 빈번하며 이 내용은 전 세계가 동일하다고 한다.

#자살, 선택인가?
“실제 자살률은 발표 수치의 1.5배로 우리나라 자살로 인한 사망을 방치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영문 교수의 진단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나이가 들수록 자살률이 늘어나는 게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죠. 선진국의 경우, 55세를 넘으면 행복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자살률이 감소하는데 비해 한국은 그 반대이고 선진국에 비해 대단히 높다는 특이점도 발견됩니다.”
 노인들의 자살 예방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이 교수는 주장한다.
“자살은 내 일이 아니라고 치부하는데, 개인적 접근보다는 사회적 접근을 시도해 관심을 고조하고 자살유가족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자살예방은 결국 경제적문제와 취업 등을 같이 해결해야 하는 사회문제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중장년층의 경제적 문제에서 오는 우울증을 비롯한 자살 시도의 문제는 자녀에게까지 연계돼 문제가 큽니다.”
이런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자살 관련해선 너무 돈을 안들이고 있다고 이 교수는 일침을 놓는다.
 이 교수는 더구나 카이스트 학생의 자살에서 보듯이 성취와 목표 중심의 사회풍토가 만연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오로지 공부에만 올인하게 하는 엘리트교육은 정서적 안정에 치명적이라고 진단한다. 더구나 몇 해 전부터는 연예인들에 이어 전직 대통령까지 자살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자살이 문제 해결의 한 방편으로 인식될 우려마저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한다.

#자살 시도자수는 성공자의 10~20 배
“자살은 한 개인의 문제인 동시에 가족과 사회, 국가 전체의 문제이고, 자살 시도자는 그 성공자의 10~20배에 달해 드러나지 않는 문제는 더 크지만 자살은 반드시 예방할 수 있지요.”
이 교수는 자살은 단순히 정신의학이나 정신보건의 테두리에 머물러야 할 주제가 아니고, 사회 전반에 걸쳐 자살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은 없다면서 더 이상 쉬쉬하지 말고 자살에 대한 담론(談論) 형성을 통해 자살을 예방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지난 3월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조성을 위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자살 원인 및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통계가 작성되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라고 말한다.
“자살은 어느날 문득 발생하지는 않아요. 반드시 전조 증상이 있지요. 극도로 우울하고 불안하며 지쳐있을 때, 주위에 자살 도구가 있을 때, 자신의 죽음이 주위에 미칠 영향에 관심을 보일 때, 자살 의도를 직접 말할 때, 초조하거나 불안해하던 사람이 갑자기 차분해졌을 때, 가족이나 건강 상실의 경험이 있을 때, 자살시도 경력이 있을 때는 주위 사람들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이 교수는 농촌의 경우, 홀로 고립된 노인들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도시에 비해 건강한 환경이라고 얘기한다. 땅의 힘을 가진 농촌은 이웃간의  따뜻한 정을 나눌 수 있고, 일하는 즐거움을 느낄 있는 점도 자살예방이란 측면에서는 유리하다는 것이다.
“농약보관함을 일정한 곳에 설치, 각 가정에서 쓰다 남은 농약병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농촌지역의 충동적 자살예방 효과가 있습니다.”
 15년 동안 정신보건사업 분야에서 일하며 이 교수가 배운 인생철학은 무엇일까?
“‘너그럽게, 담담하게, 분노를 거두고, 천천히 순리에 맞게 즐거움을 느끼면서 일하라’는 거지요. 스트레스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스트레스를 줄이는 노력보다는 스트레스와 공존하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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