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이범수

지난 3월 30일 서울 중구 에스티아 웨딩 홀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지난해 드라마 ‘자이언트’에서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한강건설 창업주로 성공하는 기업인 ‘이강모’ 역으로 탁월한 연기력을 보여준 배우 이범수(40) 씨.
이날 오후 2시부터 열린 베트남 출신 결혼이민자 여성 세 쌍의 합동결혼식장에 영화배우  이범수가 웬일일까...혹시 영화나 드라마 촬영?
하지만 이범수 씨는 축사까지 하며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함께하는가 하면 세 쌍의 부부에게 직접 악수와 덕담을 건네며 행복을 빌어줬다.
이범수 씨는 작년 자신의 결혼식 때 받은 축의금 3천만 원을 다문화가정 합동결혼식비용으로 쾌척한 이 날 결혼식의 후원자였다.
그러고 보니 유명 배우이자 탤런트로만 기억되던 이범수 씨가 후원이나 선행으로 심심치 않게 매스컴에 올랐던 것이 생각났다.
매년 겨울철이 되면 사랑의 연탄 나르기에 빠지지 않았고, 아프리카 빈곤국 가정을 위해 염소를 1000마리나 보냈다는 기사, 장애인 복지회관에 평생 기부회원으로 활동하는 이야기 등. 작년에는 고려대에 장학금 1억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평범 속에 가린 장점
이범수 씨는 아담한 체구에 소박한(?) 외모로 대형스타로 발돋움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이던 배우였다. 1990년 스무 살의 나이로 영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라는 작품으로 데뷔했을 때만 해도 거의 눈에 띄지 조차 않았다.
길거리에 다니면 널려 있는(?) 너무나도 평범한 외모와 마스크의 이범수가 도대체 무슨 용기로  연기 판에 뛰어들었을까?
본인도 그저 웃는다. 하지만 정확한 발성과 호소력 있는 대사전달, 그리고 평범하기에 어느 역할이나 맡을 수 있는 넓은 배역(配役)의 폭....이런 자신의 장점을 그는 최대한 발휘했다.
그는 우선 표정연기가 일품이다. 목소리도 좋아 끝 울림이 그윽하고 명징(明徵)하다. 이는 배우로서 더 할 수 없는 장점이다.
하지만 그런 장점은 자신의 평범한 외양에 가려 발휘할 기회를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왔다.

‘태양은 없다’로 태양을 보다
1998년 그는 이정재, 정우성, 한고은 등이 주연한 ‘태양은 없다’에 출연하는 기회를 얻었다.
중간중간 은행나무침대(1996년), 접속(1997년) 등 대 히트를 기록한 영화에 출연했지만 아직 이범수라는 이름을 각인시키지는 못했던 것이다.
단발머리의 우스꽝스러운 외모에 비열하고도 지독한 사채업자로 출연한 이범수는 시종일관 이정재를 괴롭히며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지금의 이범수를 생각하면 이 영화에서의 사채업자 역이 연기파 배우 이범수 탄생의 서곡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웅비의 나래를 펴기 시작한 그에게 정말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쉬리’의 출연기회를 잡은 것이다.

의리로 날려버린 기회
“영화 쉬리를 기억하시죠?”
지난 1999년 개봉돼 우리나라 영화에서 관객수 600만 명을 돌파한 기념비 적인 영화 ‘쉬리’를 누가 모를까!
한석규, 최민식 등 이미 스타급 연기자였던 사람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무명의 연기자였던 김윤진, 송강호, 박용우 등이 쉬리에 출연해서 스타로 발돋움하지 않았던가.
“그 쉬리의 오디션에 응시했었는데요....그때 떨어진게 아니라...양보랄까...그냥 포기했던거죠.” 쉬리는 제작단계에서부터 화제를 몰고 다녀 대박흥행이 불 보듯 했다.
이유는 이렇다. 당시 이범수가 지원한 ‘덜 떨어진’ 중앙정보부 요원(박용우가 연기) 역에 이범수 뿐 아니라 공형진, 강성진, 박용우 등이 경합하게 됐던 것이다.
‘태양은 없다’로 이미 연기력을 인정받은 이범수는 유리한 고지에 있었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인 이범수는 “하필이면 다들 동문이었죠. 다같이 어려웠던 처지에 동문들끼리 경쟁한다는 게 불편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이범수 성격의 일단을 알 것 같은 ‘바보 같은’(?) 에피소드의 하나.

‘몽정기’ 이후 대표배우로
이범수 연기의 진가를 보여준 ‘몽정기’(2002년). 순진한 노총각교사 역을 맡은 그는 이 영화로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이후 이범수는 ‘오 브라더스’ ‘이대로 죽을 수없다’ ‘슈퍼스타 감사용’ ‘킹콩을 들다’ 등에 출연하며 히트를 쳤고, 단독주연으로도 손색이 없는 대표배우로 발돋움한다.
“하지만 대중에게 결정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에서의 깐깐한 의사역, 이른바 ‘버럭 범수’ 역을 하고 난 후부터죠. 역시 TV의 위력이 세긴 세더라고요”
그 후 2010년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자이언트의 이강모 사장 역으로 그는 톱스타의 반열에 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캐릭터마다 변신하는 탄탄한 연기력이 밑바탕이 됐음은 물론이다.

좋은 일 많이 하며 살래요
이범수는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성어의 뜻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춥고 배고픈 기다림의 시간도 길었지만  쓰라린 시간으로만 보지는 않는다”는 그는 나 자신의 장점을 믿고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살았다“고 말했다.
그의 재능(송곳)은 주연급 배우가 되기 어려울 것 같은 평범한 외모를 넘어 주머니를 뚫고 나왔던 것이다.

다시 결혼식 장. 그는 “작년에 결혼하며 인생에서, 연기활동에서 많은 안정을 얻었다”며 “다문화가족 결혼식을 계속 후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결혼 이후 많은 것이 변한 나로서는 힘든 분들의 결혼식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도 말했다. 사회의 그늘진 곳을 찾아다니며 어렵고 외롭고 힘겨운 사람들에게 많은 선행을 했던 이범수 씨.

우리나라 연기파 배우의 자이언트 이범수 씨... ‘이 사람 선행도 자이언트였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